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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그레고리오 6세'''(<small>[[라틴어]]:</small> Gregorius PP. VI, <small>[[이탈리아어]]:</small> Papa Gregorio VI)는 제148대 [[교황]](재위: [[1045년]] 4월/5월 - [[1046년]] [[12월 20일]])이다. 본명은 '''요한네스 그라시아누스'''(<small>[[라틴어]]:</small> Johannes Gratianus)이다.
 
== 생애 ==
=== 교황이 되기 이전 ===
그라티아누스는 [[산 조반니 아 포르타 라티나 성당]]의 [[수석사제]]<ref>John N.D. Kelly, ''Gran Dizionario Illustrato dei Papi'', p. 389</ref>로서 대단히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사람들로부터 명성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막강한 집안인 테오필락투스 가문의 권세에 힘입어 20세의 나이에 교황직에 오른 [[교황 베네딕토 9세]]의 대부이기도 하였다.<ref>Liber pontificalis, p. 331</ref> 베네딕토 9세는 가족들의 등쌀에 떠밀려 교황이 된 것을 후회한다면서 혼인도 하고 싶기 때문에 대부를 불러 자신이 교황직을 사임할 수 있는지 상담을 요청하였다. 그는 자신이 교황직을 포기하는 것이 맞다는 확신이 서자, 자신의 대부에게 거액을 주는 대가로 교황직을 넘겨받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로마 교구와 보편 교회를 위해 부적절한 교황은 필요없다고 생각한 요한네스 그라티아누스는 그에게 거액(1,000-2,000파운드의 은<ref>Manoscritto Vaticano latino 1340, per la cui descrizione cfr. Le Liber pontificalis, p. CCV</ref>)을 주며 교황직을 넘겨받았다.
 
=== 재임기간 ===
그라시아누스는 그레고리오 6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좌에 착좌하였다. 그러나 [[베드로 다미아노|성 베드로 다미아노]]와 같이 엄격한 인물들로부터 크게 환영과 지지를 받았음에도 교회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한편 베네딕토 9세가 교황직을 팔고 로마를 떠났을 때, 이미 이탈리아에는 베드로좌를 노리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사비나]]의 주교 요한으로, 1044년 베네딕토 9세를 로마에서 축출한 귀족들에 의해 [[교황 실베스테르 3세]]로 옹립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베네딕토 9세가 로마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교구 소재지인 사비나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실베스테르 3세는 자신이 정당한 교황이라는 주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정치적 동맹을 통해 로마에 다시 들어가 복위하기 위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선종할 때까지 그의 곁에는 힐데브란트가 함께 있었다. 이후 힐데브란트는 클뤼니에서 1년 정도를 지낸 다음 1049년 1월 교황 클레멘스 2세와 [[교황 다마소 2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되는 브루노([[교황 레오 9세]])와 함께 로마로 돌아갔다. 그리고 본인이 1073년 교황으로 선출되자, 자신의 새 이름으로 그레고리오 7세를 선택함으로써 그레고리오 6세가 합법적인 교황이었음을 공표하였다.
 
== 각주 ==
{{위키공용분류|Gregorius VI}}
{{각주}}
[[분류:로마 출신]]
[[분류:이탈리아 출신 교황]]
[[분류:11세기 이탈리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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