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앤 크로퍼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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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필요|날짜=2012-11-12}}
{{영화인 정보
| 이름 = 조앤 크로퍼드
| 사진 = Joan Crawford - 1936 - Hurrell.JPG
| 사진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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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oan Crawford Signature.svg|thumb|서명]]
'''조앤 크로퍼드'''(Joan Crawford, 1904년 3월 23일 ~ 1977년 3월 10일)은 미국의 영화, 텔레비전, 극장 배우이다.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기 전에 극장 회사에서 댄서로 시작한 크로퍼드는 1925년에 [[메트로-골드윈-메이어]]와 영화 계약에 서명하였다.
 
 
초년에는 1920년대 재즈 시대의 쾌활한 왈가닥 소녀로 강한 인상을 주었으며 후기에는 심리적 멜로드라마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녀는그는 육체파 배우로 성장했으며, 호화로운 드레스에 모피를 두른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인 역으로 종종 등장했다.
 
 
크로퍼드는 빌리 캐신이라는 이름으로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다가, 1924년에는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에 무용수로 출연했다. 1925년부터는 영화에 출연하여 〈춤추는 딸들 Our Dancing Daughters〉(1928)·〈춤·바보·춤 Dance, Fools, Dance〉(1931)·〈춤추는 숙녀[[Dancing Lady]]〉(1933) 등의 인기 있는 영화에서 춤 솜씨를 보여주었다. 그녀가그가 인상적인 배우로 성공한 초기 작품으로는 〈여인들 [[The Women]]〉(1939)·〈수잔과 하느님 [[Susan and God]]〉(1940)·〈이상한 짐 Strange Cargo〉(1940)·〈여자의 얼굴 [[A Woman's Face]]〉(1941) 등이 있다.
 
 
크로퍼드의 연기생활에 전환점은 그녀가그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밀드레드 피어스 [[Mildred Pierce]]〉(1945)였다. 이 영화는 감정적이며 야심 있는 여인이 여급에서 레스토랑 체인점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었으며, 이 작품 뒤에 그녀는그는 〈유모레스크 Humoresque〉(1947)·〈서든 피어 Sudden Fear〉(1952)·〈에스더 코스텔로의 이야기 The Story of Esther Costello〉(1957) 등의 수준높은 영화에 출연했다.
 
후기에 훌륭한 연기를 보인 영화로는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일이 생겼나? [[Whatever Happened to Baby Jane?]]〉(1962)·〈관리인 The Caretakers〉(1963)이 있다.
 
크로퍼드는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주니어]], 프랑수아 톤(Francoise Tone, 1935~39), 필립 테리(Phillip Terry, 1942~46) 등의 배우와 [[펩시콜라]]의 전 회장인 앨프리드 스틸(Alfred Steele)과 결혼생활을 했다. 1959년 스틸이 죽자 그녀는그는 회사의 이사가 되었다.
 
하지만 1973년에 나이가 많고 더이상 영화 출연제의가 들어오지 않자 퇴임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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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스타들의 입양절차가 까다로워졌고, 빈부격차의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아동의 복지의 관심이 높아졌다.
 
<친애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조안 크로퍼드는 무섭고 괴팍한 엄마의 이미지가 씌워진다.
 
이 영화의 영감을 얻어 [[블루 오이스터 컬트]]의 Joan Crawford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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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퍼드가 자기보다 어린 배우들에게 밀려 [[메트로-골드윈-메이어]]와 에서 어쩔수 없이 나가게 되고 워너브라더스로 이적할 때 [[파일:Joan_Crawford_in_The_Women_trailer_2.jpg ‎|thumb|right|]]
 
베티를 조안은존은 베티에게 꽃을 보내 휴가에서 돌아온 베티가 자기 사무실로 왔을 때 깜짝 선물로 꽃을 보게 했다.
 
그 안에는 쪽지가 들어있었다.
 
 
그렇지만 베티는 돌려보냈고, 조안은존은 스카프들이 들어있는 상자 또는 향수 상자를 끼워넣어 꽃을 선물했다. 하지만 베티는 그것들을 다 돌려 보냈다 <ref> Considine, Shaun 저, Bette and Joan: The Divine Feud, Backinprint.com, 2000 | 147,199 </ref>
 
 
 
[[베티 데이비스]]는 MGM에 있던 조안 크로퍼드가 같은 회사에서 배역을 경쟁하고, 때론 자신의 촬영장 옆에 그녀의그의 촬영장이 있고
 
Flapper였던 조안이존이 우아하고 지성적인 자신의 배역을 따라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조안은존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베티 데이비스와 한번 호흡을 맞추고 싶어했지만, 베티는 조안과존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
 
 
 
베티와 조안은존은 나이가 들면서 인기가 시들어 영화보단 tv에 모습을 더 많이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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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베티 데이비스]]가 1962년에 이구아나의 밤(The Night of the Iguana)이란 연극을 브로드웨이에서 하고 있을 때
 
베티 데이비스의 재능을 동경하던 조안 크로퍼드가 무대 뒤로 찾아와 <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일이 생겼나? (다른 이름: 제인의 말로) Whatever Happened to Baby Jane? 원작의 복사본을 주면서 ,로버트 알드리치에게 이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해서 내가 여기 출연할 건데 같이 주연을 하자고 해서 베티는 조안과존과 같이 출연하게 되었다.
 
특히 [[베티 데이비스]]와 조안 크로퍼드는 영화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도 라이벌관계로 평생 원수같이 지내왔다고 알려지게 되는데, 베티 데이비스는 조안의존의 몸에 불이나도 난 오줌을 누지않겠다고 공격을 하였고 그녀가그가 MGM의 래시(개)를 제외한 모든남자와 잠자리를 했다는 비방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 촬영장에 코카콜라 자판기를 가져다놓고 하였는데 그것은 조안이존이 펩시콜라 사장의 부인이였기 때문이였다고 한다.
 
조안 역시 만만치않았는데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일이 생겼나?' 촬영때는 배티가 가정부를 죽이고 자루를 담아 옮기는장면이있었는데 일부러 자루안에 무거운것을 집어넣어 [[배티 데이비스]]의 허리를 다치게 들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조안은존은 '나는 베티를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분개할 뿐이다 .튀어나온 눈알, 담배, 우스꽝스러운 짤막한 대사들을 빼면 그녀에게그에게 뭐가 남는가? '그 여자는 가짜다 하지만 대중은 바로 그점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소문들이 당대의 두 라이벌을 이용해 영화 홍보에 이용되었다.
 
 
그리고 사실 두사람은 프로답게 서로에게 예의를 지켜가며 촬영에 임했지만 [[파일:Bette_Davis_and_Joan_Crawford_in_Whatever_Happened_to_Baby_Jane_trailer.jpg|thumb|right|]]
조안 크로퍼드는 아름답게 나왔던 자신이 힘없고 늙은 퇴물로 나오는게 싫어 리허설 때 크게 울음을 터트렸고 될 수 있으면 늙게 보이지 않으려고 옷을 예쁘게 입으려고 하고 화장으로 주름을 가리려고 하는 것에 베티 데이비스는 못마땅하게 여겼다.
 
조안 크로퍼드는 촬영장에서 리무진을 준비하며 코디,어시스턴트 등을 대동하며 스타처럼 보이는 걸 좋아했지만
 
베티는 조안의존의 허영된 스타의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예산으로 시작되었던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베티 데이비스의 열연으로 [[베티 데이비스]]는 그 해 Oscar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조안 크로퍼드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베티 데이비스는 자신이 세 개의 오스카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배우가배우가 될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반면 크로퍼드는 밀드레드 피어스로 오스카상을 한 개밖에 수상하지 못했다. 베티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단연 주목 대상이었다. 무대 뒤에서 그녀는그는 조안에게존에게 친절했다.
 
오늘은 자신을 위한 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녀를그를 제외한 세 명의 여배우가배우가 후보로 올라 있었지만, 모두들 데이비스의 수상을 점찍었다).
 
크로퍼드 또한 공손한 태도를 일관했다. 시상식 내내 자신의 이름을 불리길 고대하던 데이비스는 충격에 빠졌다. 자신이 아닌 Anne Bencroft가 The miracle Worker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베티가 멍하니 서 있을 때 누군가 팔을 잡으며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크로퍼드였다. 그녀는그는 앤 밴크로프트를 대신해 상을 받기 위해 얼이 빠져 있는 베티를 지나쳐갔다(오스카 수상자는 그날 밤 시상식에 참가하지 못했었다).
 
영광의 밤이 될 거란 기대는 크로퍼드가 spotlight를 앗아가면서 베티 데이비스는 잊기 힘든 오욕을 받았다. <ref> Considine, Shaun 저, Bette and Joan: The Divine Feud, Backinprint.com, 2000 326~329 페이지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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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sh...Hush, Sweet Charlotte >> =====
 
몇 년 뒤 베티와 조안은존은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일이 생겼나?(1962)>를 감독했던 로버트 알드리치와 < 허쉬... 허쉬, 스위트 샬롯 Hush...Hush, Sweet Charlotte (1964)>을 같이 찍게 된다. 조안은존은 베티와 함께 호홉을 맞추는 걸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조안은존은 폐렴으로 영화에서 하차했다
 
하지만 베티는 조안이존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자기에게 준 수모를 잊지 못했고 [[코카콜라]]를 좋아하던 베티 데이비스가 펩시 CEO 아내인 조안이존이 촬영장에 코카콜라 자판기를 펩시 자판기로 교체하는 걸 혐오하고,둘이 영화 촬영장에서 홍보용으로 사진기자 앞에서 같이 사진 찍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다.
 
그리고 베이비 제인에서 좀 추하게 나온 조안은존은 이번 기회에 자신이 베티보다 더 아름답게 돋보일려고 했기 때문에
 
[[베티 데이비스]]는 감독 로버트 알드리치에게 조안 출연 분량을 점차 줄이라고 압박해 조안을존을 이 영화에서 밀어내게 했다는 것이다 .
 
 
<허쉬... 허쉬, 스위트 샬롯 Hush...Hush, Sweet Charlotte (1964)>에서 폐렴으로 병원에 있던 조안 대신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대신 선출 되었고, 조안은존은 자신이 출연 못하게 된걸 직접 안 대신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그로서 같은 영화에 출연하게 된 [[베티 데이비스]]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급격히 친해져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ref> Considine, Shaun 저, Bette and Joan: The Divine Feud, Backinprint.com, 2000 | 335~363쪽 </ref> <ref> [http://www.joancrawfordbest.com/timeline60s.htm]</ref>
 
=== 그 밖의 생애 ===
[[파일: Joan_Crawford_in_The_Last_of_Mrs_Cheyney_trailer.jpg|thumb|260px]]
 
1905년 3월 23일 텍사스주 센안토니오에서 태어난 조안 크로퍼드의 본명은 <루실 르슈르(Lucille Fay LeSueur)>였다. 부친이 가정을 버리자 세탁부였던 어머니는 캔자스시티의 기숙사제 스쿨에서 딸 <루실>의 일자리를 얻어냈다. 열두 살의 그녀는그는 그곳에서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엄한 벌을 받아야만 했다.
 
 
그녀는그는 학비를 내는 대신 학교서 청소,밥 준비등 학교의 잡일을 함으로써 학교를 다녔는데 그 영향으로 결벽증이 생겨 평소에도 손을 자주 씻고, 호텔에서 묵었을 때도 먼저 욕조를 깨끗이 닦는데다, 집에서도 깨끗이 청소를 했다.
 
 
1924년 조안은존은 뉴욕으로 뛰쳐나와 무희로서 무대에 섰다. 그녀가그가 브로드웨이에서 춤추고 있을 때 MGM영화사와 5년간 계약을 맺고 1925년 로스엔젤레스로 나가 마침내 영화배우로서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1927년 말 조안 크로퍼드는 화려하게 변신했다. 매주일 머리 색깔을 바꾸고 다리가 환하게 드러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서 춤을 추고, 말쑥한 남성에게 에스코트되어 거리를 활보하는 등 그녀의그의 최대 목표는 영원한 톱의 자리였다. 할리우드에서 타락한 생활을 보내는 동안 그녀에게그에게 <흥행가의 독약 box office poison>이라는 칭호도 붙여졌다.<ref>[http://www.joancrawfordbest.com/biography.htm]</ref>
 
 
조안 크로퍼드는 네 번을 결혼했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결혼생활은 4년간밖에 계속되지 않았다. 그녀는그는 남편을 바꿀 때마다 브랜드우드에 있는 자택의 호명을 금방 바꾸었다. 처음 결혼 상대자는 할리우드에서는 명문인 페어뱅크스 집안의 아들인 스물 다섯 살의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주니어였다. 소위 <왕자와 신데렐라>라 불리던 두 사람은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1929년 6월에 결혼식을 올렸으나 4년 후 이상적이었던 결혼생활은 파국을 맞이했다. 두 사람은 아이를 갖고 싶어 했으나 더글라스의 아버지 아내인 <[[메리 픽퍼드]]>가 <나를 할머니로 만드는 일이 생기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위협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조안이존이 아이를 유산하면서 파국을 맞게 된 것이다. 후에 그녀는그는 유산이 아니고 낙태였다고 고백했다.
 
 
사실 <조안>은 이혼에 앞서 <[[클라크 게이블]]>과의 연애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는 기혼한 남자였으나 두 사람은 1960년에 그가 죽을 때까지 연애하던 때와 같이 좋은 친구로서 교제를 계속하였다. <조안>은 <게이블>을 <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남성>이라고 칭찬했으나 후에는 <스크린에서의 힘찬 야성미가 가득 찬 이미지와는 반대로 실제의 그는 섹스에 약했다>고 고백했다.
 
[[클라크 게이블]]과의 결혼을 단념한 조안은존은 유복하고 교양이 풍부한 동부 출신의 배우 프랑수아 톤과 1935년 10월 11일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이 결혼은 출발에서부터 불안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그녀는그는 아이만 생기면 원만해질 것이라고 믿었으나 두 차례의 유산 끝에 다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이때 <톤>과 어느 여배우의배우의 정사 현장을 목격한 <조안>은 1939년 이혼을 단행하고, 한 여자 아이와 양자 결연을 맺어 그 이름을 조안 크로퍼드 쥬니어라고 했다가 수개월 후에 <크리스티나>라고 바꾸었다.
 
 
이렇게 아이까지 곁에 두어도 남성의 애정에 굶주린 서른여덟 살의 <조안>은 1942년 세 살 아래인 조연배우 <필립 테리>와 충동적으로 결혼해버렸다. 185cm의 장신에 근골이 강한 신체, 더구나 그와는 서로 알게 된 지 불과 6주일밖에 안 되는,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기계적인 것으로 변모되어 갔다.
 
조안>은 매일의 스케줄 표를 빈틈없이 만들어 촬영스텝에게 돌리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매일 저녁 전의 1시간 반을 <필립과의 한때>, 즉 섹스에 할당한 시간을 지정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그녀는그는 두 번째로 남자 아이와 양자 결연하고 <필립 테리 주니어>라고 이름을 지었으나 1946년 <테리>와 이혼하자 곧 <크리스토퍼 크로퍼드>로 개명했다.
 
이어 <조안>은 1947년 <캐시>와 <신시아>라는 두 아이와 양자결연을 맺었다. 이 아이들은 서로 생판 남남이고 생년월일도 물론 얼굴도 닮지 않았으나 그녀는그는 언제나 두 아이를 쌍둥이 취급했다.
 
<조안>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은 나날이 노골적으로 변화되어 갔다. <록 허드슨>이나 <조지 네이터> 등 젊은 사내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다가 결국에는 이혼소송의 피고로서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쉰두 살의 <조안>은 속옷만을 걸친 망칙스런 모습으로 영화감독 <찰즈 월터스>의 개인 저택에 나타나 웃옷을 벗어던지고는 그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당신이 앞으로 쓸 여배우를배우를 잘 감정해둬야 해요.> <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kyoong&logNo=110043641480]</ref>
 
 
 
<조안>의 마지막 결혼은 1955년 5월 네 번째의 남편 <알프레드 스틸>이었다. 그는 [[펩시콜라]] 사장으로 정력적인 남성이었다. 1959년 그가 심장마비로 죽을 때까지 펩시의 판매 촉진을 꾀해 부부가 함께 전 세계를 돌고 있었다. 크로퍼드는 스틸이 죽자 흡연량과 알코올 섭취가 더 크게 늘었고 알콜 중독,니코틴 중독이 된다. 알콜 중독으로 촬영장에서도 술을 마시고 말년에는 그녀가그가 좋아한 술 140Proof(섭씨 60도) 스미노프(smirnoff) [[보드카]]에 의존했다. 이때문에 건강을 망치고 얼굴혈색이 나빠져 <크리스찬 사이언스 christian science> 로 말년에 알코올과 담배를 끊으나 이미 건강은 나빠져 암으로까지 발전되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로 나빠진 건강을 회복하려고 병원치료도 거부한 채 집에서 간호사에게 간호받았으나 1977년 5월 10일 장례식장에서 1,500명의 팬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췌장암으로 <조안>은 세상을 떠났다. <ref> Joan Crawford: The Essential Biography by Quirk, Lawrence J., Schoell, William | UniversityPressofKentucky | 2002.09.01 250~251쪽 </ref>
 
 
 
===== GAY ICON =====
베티 데이비스와 더불어 조안 크로퍼드는 게이 아이콘 (gay icon)이다.
 
아름다운 모습과 더불어 여성으로서 남성에 맞서 귀속되지 않은 의지 깊은 여성상은 여권주의자 뿐만 아니라 게이들에게도 환호를 받았다.
 
베티와 조안이존이 함께 출연했던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는 특히 남자 게이들의 코미디적 패러디 대상이 되고 있고
 
조안 크로퍼드를 나쁜 엄마로 묘사한 친애하는 어머니(Mommie dearest)도 특히 남자 게이들의 코미디적 패러디 대상이 되고 있다. <ref>[http://www.gay.net/entertainment/2010/09/gay-icons-joan-crawford-part-1.html]</ref> <ref>[http://www.imdb.com/title/tt1381402/]</ref>
 
== 출연 ==
226번째 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
{{AFI 100대 배우}}
{{기본정렬:크로퍼드, 조앤}}
{{Authority contr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