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뉴기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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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여 년 전 [[멜라네시아인]]들이 [[뉴기니 섬]]에 들어가 오랫동안 원시적인 부족 사회를 운영했다. [[19세기]]에 [[네덜란드]]가 [[뉴기니 섬]]의 서해안에 상관(商館)을 설치하고, [[1885년]] 네덜란드와 [[영국]]·[[독일]]이 뉴기니 섬을 분할해 네덜란드가 섬의 서반부를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에 병합하였다.
[[1949년]],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을 종식시킨 헤이그 원탁 회의에서 이 지역의 귀속 문제는 난항을 겪었고, [[네덜란드령 뉴기니]](1949년-1962년)는 네덜란드에 남았다. [[1952년]] 네덜란드는 파푸아인의[[파푸아인]]의 자치권과 자결권을 인정하고 독립 준비를 진행하였고, [[경계선신성의국경선신성의 원칙]](Uti possidetis juris)에 따라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인도네시아]]와 대립하였다.
 
[[소련]]의 군사 원조를 받아 군비를 확장한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0년]] 네덜란드와의 국교 단절 및 무력에 의한 해결의지를 밝히는 한편 이 지역 문제를 유엔에 제소했다. [[1961년]] [[12월 1일]] 네덜란드가 '''서파푸아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자, [[12월 18일]] 인도네시아군이 서파푸아를 침공했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이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양측을 중재해 서파푸아는 [[1962년]] 10월 유엔의 관리하에 놓여졌고, [[1963년]] 5월 인도네시아에 인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