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영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14세기 한국 사람; 예쁘게 바꿈 |
|||
61번째 줄:
이때 그의 폐위와 [[고려 우왕|우왕]], 창왕 신씨설을 동조한 인물 중에는 [[정몽주]]도 있었다. [[정몽주]]는 [[1392년]]의 [[고려]] 멸망과 역성혁명에는 반대하였으나 [[조선 태조|이성계]], [[정도전]], [[조준]] 등이 [[고려 우왕|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폐위하는 데 가담하였다. [[조선 태조|이성계]] 일파의 주장은 고려사, [[고려사절요]]에도 등재되어 신우, 신창으로 등재되었으나 근거없는 루머로 확인된다. 이는 그가 주장한 일편단심이나 [[성리학]]적 충효 사상과도 모순된다.
[[조선 태조|이성계]]는 [[정몽주]] 등과 이른바 폐가입진[廢假入眞], 즉 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는 논리로 창왕을 폐위시키고, 제20대 왕인 신종의 7세손 [[고려 공양왕|정창군 요]]를 등극시킨다.<ref>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웅진닷컴, 2004) 24페이지</ref>
[[고려 우왕|우왕]] 복위 사건은 주모자로 거론된 사람과 처리 과정 등을 볼 때 다소 의문이 남기는 하지만, 정몽주는 [[조선 태조|이성계]]와 뜻을 같이하여 [[고려 공양왕|공양왕]]을 세운 것은 물론이고, '폐가입진
== 가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