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14.51.171.77(토론)의 편집을 175.196.23.13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3번째 줄:
== 개요 ==
[[파일:Armillary sphere.png|thumb|220px|천구의]]
혼천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천문관측에 사용하여 왔다. [[한나라]]의 [[장형 (평자)|장형]]이 만든 것이나 [[당나라]]의 황도유의(黃道遊儀)나 수운혼천(水運渾天) 그리고 [[송나라]]의 부루표영(浮漏表影)이나 혼천의상(渾天儀象) 그리고 [[원나라]]의 앙의(仰儀), 간의(簡儀) 같은 것은 모두 정교하게 제작된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측정을 할 때마다 수동으로 작동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이 자동으로 알아서 시간과 날짜를 알려 주었다.
 
한국에는 문헌상으로 [[1433년]] [[6월 25일]]([[세종]] 15년 [[음력 6월 9일]])에 [[정초 (조선)|정초]], [[박연]], [[김진 (문신)|김진]] 등이 제작한 것이 처음이다. 당시 세종과 세자는 한번도 간의대에 숙직을 하지 않을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