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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9월,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이 백곰 핵미사일 시험발사에 크게 반발하여,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 미사일 지침]]이란 메모를 한국 정부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노재현]] 국방장관이 서면으로 동의했다. 지대지 탄도 미사일의 사거리를 180 km로 제한한다는 내용인데, 당시에는 사거리 180 km 탄도 미사일 보유국이 6개국 뿐이며, 탄도 미사일의 정확도([[CEP]])가 떨어져서, 6개국 모두 핵탄두만 탑재했다. 즉 미국은 사거리 180 km 탄도 미사일이 핵탄두만 탑재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 미사일의 보유를 동의해 주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친구인 [[김재규]] [[중앙정보부]](KCIA) 국장한테 암살되었다. 김재규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죽였다고 주장했다.
*1979년 12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의 양아들로도 불리며, 청와대를 자주 드나들던 [[전두환]] 기무사령관이 [[12·12 군사 반란]]으로 집권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쿠데타를 묵인하여, [[지미 카터]] 대통령이 집권에 동의함을 나타냈다. 육군 중장 전두환 기무사령관은 [[포트 베닝]]이 미국 특전사 학교 1기 유학생 출신이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장거리 핵미사일 [[대포동 1호]]를 발사해 한국 등에 [[대포동 쇼크]]가 발생했다.
*1999년 4월 10일, 한국 [[김대중]] 정부는 [[현무-2]]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퍼싱 핵미사일을 베끼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미국 퍼싱 핵미사일과 외양이 거의 똑같다. 길이, 직경이 퍼싱과 거의 똑같은데도, 한국 국방부는 사거리가 고작 40 km라고 발표했다. 미국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