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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학교'''(五山學校)는 [[1907년]] 12월 남강(南崗) [[이승훈 (1864년)|이승훈]](李昇薰)이 민족운동의 인재와 국민교육의 사표(師表)를 양성할 목적으로 [[정주시|정주]]에 세운 학교이다.<ref>오산은 정주에 있는 다섯 산을 가르킨다가리킨다.</ref> 당시 관찰사 [[박성봉]]은 재원을 지원하여 학교 설립을 도왔다. 초대 교장은 [[백이행]](白彛行)이었으나, 1910년 나부열(羅富悅) 목사를 설립자 겸 교장으로 추대하여 기독교주의 학교로 만들었다.
 
초대 교장 [[백이행]]의 뒤를 이어 [[이종성]](李鍾聲)·[[박기선]](朴基璿)·[[조만식]](曺晩植)·[[류영모]](柳永模)·[[홍명희]](洪命熹)·[[김성환]](金星煥)·[[주기용]](朱基瑢) 같은 이들이 남강의 지도정신 아래 학교를 이끌어 갔다. 교사로는 3·1운동 전엔 [[여준]](呂準)·[[서진순]](徐進淳)·[[류영모]](柳永模)·[[이택호]](李宅鎬)·[[염상섭]](廉尙燮)·[[김억]](金億)·[[이상정]](李相定)·[[진연근]](陳演根)·[[이윤재]] (李允宰) 등이 있었다. 오산학교는 사관학교·훈련원·정치학교·인문중학교 및 특수모범자 양성소 등을 겸한 학교였다. 소정의 교과과정 외에 남강의 훈화와 직접적 훈도를 통한 민족정신의 고취와 민족성 개조에 치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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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고등학교 (서울)|오산고등학교]]
* [[오산중학교 (서울)|오산중학교]]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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