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남작: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42번째 줄: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남작'''({{lang|de|Wolfram Freiherr von Richthofen}}, 1895년 10월 10일 - 1945년 7월 12일)은 독일의 공군 군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루프트바페]]에서 원수까지 진급했다. 1895년 프로이센 귀족가인 [[리히트호펜 가]]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독일 제국 육군]]에 입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처음에는 [[기병]]으로, 그 뒤에는 항공대로 복무했다.
 
[[전간기]]에 리히트호펜은 공학을 공부하다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군대인 [[독일 국가방위군|국가방위군]]에 재입대하였고, [[나치 독일]]이 수립된 뒤의 [[독일 국방군|국방군]]에서도 복무했다. 리히트호펜은 신생 독일 공군에 참여했으며 [[스페인 내전]]에서 국민군파를 지지하는 [[콘도르 군단]]을 지휘하여 [[게르니카 폭격]]을 수행하였다. 또한 이 때 발전한 지-공간 통신을 활용한 [[근접항공지원]]과 [[급강하폭격기]]의 필요성을 통찰했고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수행에 영향을 주었다.
 
1939년 9월 전쟁이 시작되자 리히트호펜은 공대지 공격부대인 [[제8비행군단 (독일)|제8비행군단]] 군단장이 되어 [[폴란드 침공]]에 종군했다. 이후 1940년 5월에서 6월 사이에는 서유럽 전체의 공군을 통솔했다. [[프랑스 공방전]] 때 그가 지휘한 공군의 활약, 특히 [[영불해협]]으로의 진격에 관한 치하로서 1940년 5월 23일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수훈받았다. 이후 1940년에서 1941년까지 [[영국 본토 항공전]]과 [[발칸 전역 (제2차 세계 대전)|발칸 전역]]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