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환 (대한민국 임시정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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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은 [[1875년]] [[서울특별시|한성]]에서 태어나 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곳에서 부패한 장교들에게 항의하다가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 독립운동에 투신 ===
이후 [[1907년]]에는 [[양기탁]], [[전덕기]], [[이동녕]],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는데 가담하였고, [[헤이그 특사 사건]]에 일조하였다.
 
=== 독립 운동 ===
==== 독립 운동 ====
[[파일:Kimyun1943.jpg|thumb|180px|right|1943년 5월 중경에서 열린 '재중 한인대회'에서. 조성환 (윤기섭과 차리석 사이에 안경쓴 사람)]]
 
[[한일 합방]] 이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12년]]에는 [[만주]]에 온 일제의 총리 [[가쓰라 다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옥살이를 하였다.
 
==== 임시정부 참여 ====
{{참고|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고,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무위원으로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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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취임하였다. [[1927년]] [[8월]] 임시정부의 내각이 개편될 때 다시 국무위원으로 추대되었다.
 
==== 광복군 창설 ====
[[파일:Kwangbeokkun 194002.jpg|썸네일|left|맨 앞줄 좌로부터 ([[박찬익]], [[조완구]], [[김구]], [[이시영 (1868년)|이시영]], [[차이석]]<br>두 번째 줄 맨 왼쪽 [[성주식]], 오른쪽 [[김붕준]]<br>맨 뒷줄 왼쪽부터 [[조성환]], [[조소앙]], [[이청천]], [[이범석]], 이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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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된 이후에는 45년 11월 귀국,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2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장이 되고 [[신탁통치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뒤 46년 [[6월 29일]] [[이승만]], [[김구]] 등에 의해 민족통일총본부(民族統一總本部) 10인협의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이어 민족통일총본부 협의원에 지명되었다.
 
===최후===
이후 [[우국노인회]] 총재 등을 지내며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병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