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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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파일:Armillary sphere.png|thumb|220px|천구의]]
혼천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천문관측에 사용하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측정을 할 때마다 수동으로 작동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이 자동으로 알아서 시간과 날짜를 알려 주었다. 한국에는 문헌상으로 [[1433년]] [[6월 25일]]([[세종]] 15년 [[음력 6월 9일]])에 [[정초 (조선)|정초]], [[박연]], [[김진 (문신)|김진]] 등이 제작한 것이 처음이다. 당시 세종과 세자는 한번도 간의대에 숙직을 하지 않을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혼천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천문관측에 사용하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측정을 할 때마다 수동으로 작동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이 자동으로 알아서 시간과 날짜를 알려 주었다.
 
한국에는 문헌상으로 [[1433년]] [[6월 25일]]([[세종]] 15년 [[음력 6월 9일]])에 [[정초 (조선)|정초]], [[박연]], [[김진 (문신)|김진]] 등이 제작한 것이 처음이다. 당시 세종과 세자는 한번도 간의대에 숙직을 하지 않을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1438년]] [[2월 1일]](세종 20년 [[음력 1월 7일]]) [[장영실]]에게 흠경각(欽敬閣)을 짓게하고, 이곳에 혼천의를 설치하였다. 하지만 이곳에 설치된 혼천의는 기기를 별도로 수동으로 작동하는 일 없이도 측정할 수 있는 그런 정밀한 기기가 아니였다.<ref>{{웹 인용
|url = 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da_12001007_003&grp=&aid=&sid=717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