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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전이후 ==
[[파일:5marshals 02.jpg|thumb|300px|left|최초로 임명된 5명의 소련원수들: 좌측부터 [[투하체프스키]], [[부됸니]], 보로실로프, [[바실리 블류헤르|블류헤르]],[[알렉산드르 예고로프|예고로프]]. 이중 부됸니와 보로실로프만 남고 [[대숙청]] 때 모두 처형된다.]]
보로실로프는 1921년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61년까지 그 자리를 유지했다. 1925년 [[미하일 프룬제]]의 죽음이후, 보로실로프는 육해군인민위원과 소련군사혁명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이 자리는 1934년까지 맡게 된다. 프룬제의 지위는 당시 소련의 최고권력을 나눠가졌던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스탈린의 삼두체제(트로이카)와 맞먹는 자리였지만, 스탈린은 지노피에프파인 프룬제보다는 자신의 사람이 맡는 것을 더 선호했다. 프룬제는 지병인 위의 내종을 수술하라고 권유받았고, 수술대 위에서 마취제인 클로로포름 과다 흡입으로 사망했다. 스탈린의 비판자들은 이 수술은 프룬제를 암살하기 위한 음모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보로실로프는 1926년 새롭게 생긴 정치국의 정규위원이 되었고 이 자리는 1960년까지 유지되었다. 그는 1930년대 스탈린의 대숙청에 깊이 관여하였다. 그는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원수의 몰락과 처형에 큰 역할을 하였다.
 
[[파일:5marshals 02.jpg|thumb|300px|left|최초로 임명된 5명의 소련원수들: 좌측부터 [[투하체프스키]], [[부됸니]], 보로실로프, [[바실리 블류헤르|블류헤르]],[[알렉산드르 예고로프|예고로프]]. 이중 부됸니와 보로실로프만 남고 [[대숙청]] 때 모두 처형된다.]]
 
== 제2차 세계 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