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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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에 [[민주한국당]]에 입당하여 [[대한민국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제11대 총선]]에서 [[마산시의 국회의원|마산시]]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고 [[1984년]] [[12월]]에 [[신한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창당에 참여하였고 이듬해 치러진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제12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이후 [[통일민주당]]의 대변인을 역임하였고 [[민주자유당]]의 정책조정실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신한국당]]의 사무총장에 임명되며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도동계]]의 실세가 되었다.
 
[[1997년]]에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재15대 대선]]의 [[신한국당]]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은 초반에 여론 조사에서 1위를 달렸으나, 아들 병역기피 의혹과 [[이인제]]가 [[국민신당 (대한민국)|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독자 출마를 선언하며 [[신한국당]]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게다가 당시 경제 위기로 인해 [[이회창]]의 지지도는 점점 추락하여 3위로 떨어진다. 그러자 강삼재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을 폭로한다.<ref>[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163963 15대 대통령 선거(Ⅱ) - 역대 대통령선거 캠페인 평가]</ref>그 내용은 [[김대중]]이 처조카인 이형택을 통해 670억원을 관리해왔고 [[1991년]] 초에 노태우로부터 20억원을 받았다고 밝힌 강삼재는 "[[김대중]] 후보가 신앙고백을 하면서까지 [[노태우]] 씨로부터 20억원 이외에는 받은 돈은 없다며 국민을 기만했으나 이 모든것이 거짓임이 드러났다."며 [[김대중]] 후보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해서 검찰은 [[김대중]]과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상황은 심각해졌고, 급기야 [[1997년]] [[10월 16일]]에 [[신한국당]]이 [[김대중]] 후보를 뇌물수수 및 조세포탈, 무고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토록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았으나 강삼재는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대통령 자격 없고 당선 되더라도 걸어내려와야 될 것이다."이라고라고 지속적으로 [[김대중]]을 공격하자<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1200329104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0-12&officeId=00032&pageNo=4&printNo=16242&publishType=00010 비자금 전쟁 여야 표정] 1997.10.12 경향신문</ref> 급기야 [[새정치국민회의]] 당원들이 강삼재의 자택에 24시간 넘게 협박하며 [[신한국당]] 당사를 폭파시키겠다는 협박전화까지 걸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01000329123010&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0-10&officeId=00032&pageNo=23&printNo=16240&publishType=00010 경찰, 여야 지구당 경비 강화] 1997.10.10 경향신문</ref> 결국 [[10월 20일]]에 [[김대중]]의 비자금 수사가 시작되었으나,<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0218_6187.html 김대중 총재 비자금 의혹 검찰 공식 수사 선거전 종결 가능]《MBC》</ref>다음날 [[대한민국 검찰|검찰]]은 [[김대중]]의 비자금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발표하였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0253_6187.html 검찰,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비자금 수사 유보]《MBC》</ref>
 
강삼재의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이회창]]의 지지도를 떨어뜨렸다. 훗날 [[이회창]]이 [[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을 성사시켜 [[한나라당]]을 창당하는 등 대반격을 일으켜 [[이인제]]를 앞질렀지만 그의 지지도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결국 [[이회창]]은 [[김대중]]에게 패해 2위로 낙선하였다. 결국 강삼재는 [[3당합당]] 이후 8년 만에 또다시 야당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