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건릉: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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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은 조선 제 22대 왕인 [[조선 정조|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1800년]] [[6월 28일]] 정조가 49세의 나이로 승하하자 유언대로 같은 해 [[11월 6일]] 아버지의 능인 현륭원(훗날 융릉) 동쪽 두 번째 언덕에 안장되었다. 21년 후 순조 21년 [[1821년]] [[3월 9일]] 효의왕후가 승하하였다. 효의왕후를 건릉 부근에 안장하려다 [[김조순]]의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주장으로 길지를 찾아 순조 21년 [[1821년]] 정조의 릉을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고 효의왕후와 합장해서 오늘날의 건릉이 되었다. 정조는 매홀(오늘날 [[수원]])이 수주(오늘날 [[인천]])보다 물이 적다고 평가하여 [[수원 화성|화성]]을 건축하며 이 사실을 부곽시키는 편이었으므로 마른 땅의 무덤이라는 이름으로 평가할만 하다.
 
합장릉이지만 융릉과 같이 혼유석이 하나이다. 19세기 왕릉 석물 제도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융릉과 건릉은 정조 때의 문운이 융성하던 기운과 양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ref>{{웹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