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호 (183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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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통리군국사무아무독판, 그 뒤 총융사, 어영대장, 무위도통사(武衛都統使), 대제학 등을 지냈다. 민씨 척족의 중심인물로서 [[1882년]] [[임오군란]] 때, 강화유수(江華留守)로 있었는데 [[민태호]]의 집도 습격을 받았다.
 
그 뒤 종일품으로 승진하여 [[의정부]][[좌찬성]]을 지냈고 [[1883년]] [[7월]] 전환국 관리사무(典圜局管理事務), [[9월]] 군국사무독판을 거쳐 다시 [[의정부]]좌찬성이 되었다. 왕가의 외척으로 사대당(事大黨)의 대표적 인물로서 활약하였으며 [[1884년]] [[갑신정변]] 때 [[윤태준]](尹泰駿), 전영사(前營使) [[한규직]](韓圭稷),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조영하]](趙寧夏), 해방총관(海防總管) [[민영목]](閔泳穆), [[내시]] [[유재현]](柳載賢) 등과 함께 입궐하던 중 [[경우궁]] 대청 앞에서 [[김옥균]] 일파가 보낸 군사에게 쫓기다가 칼에 맞고 죽임을 당했다.
 
사후 충문공(忠文公)의 시호가 내려지고 [[10월 24일]]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보낸 승지가 직접 치제하였으며 3년치의 녹봉이 내려졌다. [[1907년]] [[대한제국 순종|순종]] 즉위후 [[이윤용]]의 상소로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이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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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의 작가]]
[[분류:여흥 민씨]]
[[분류:권세가]]
[[분류:수구파]]
[[분류:조선의 부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