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40번째 줄:
[[에트루리아]]가 [[캄파니아]]에서 패배하고, 라티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게다가 산지 종족들이 라티움(latium)을 침공하는 등 몇 차례에 걸친 군사적 패배로 로마에 사회·정치적 위기가 일어나면서 왕정이 몰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ref name="hp108">M.하이켈하임, p.108.</ref> 그러나 여러 학자들은 연대 목록(fasti)에 기록된 기원전 509~507년을 왕정 몰락의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ref name="hp108"/> 초기에는 군사 위원회 (military tribune)에 의한 공동통치의 형태였다가 독재관을 자주 선출하는 문제가 생기자 2명의 집정관 제도로 바꾸었다. 로마의 정체는 견제와 균형, 권력 분점으로 구성된다. 가장 중요한 정무관은 두 [[집정관]]으로 군사 통솔권인 명령권(imperium)을 통해 집행 권력을 함께 행사했다.<ref>애드킨스, 1998년. pp.41-42.</ref> 집정관직은 오랜 기간의 실험과 발전을 거친뒤에야 비로소 정착된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5세기 중엽쯤에는 공화정의 고위 정무관직을 집정관이라 하였다.<ref>M. 하이켈하임, pp.108~109.</ref> 집정관은 원래 [[로마의 귀족|귀족]]들의 자문 회의였던 [[원로원]]과 협조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원로원은 양적으로 확대되었다.<ref>[http://www.wsu.edu/~dee/ROME/REPUBLIC.HTM 로마: 로마 공화정] 리차드 후커(Richard Hooker)가 씀. 워싱턴 주립 대학. 1999년 6월 6일, 확인일자 2007년 3월 24일</ref> 공화정의 다른 정무관으로는 [[법무관]], [[조영관]], [[재무관]]이 있었다.<ref name="Lacus">[http://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secondary/SMIGRA*/Magistratus.html 마기스트라투스(Magistratus)] 조지 롱, M.A. 《그리스와 로마 고대 역사 사전》(''A Dictionary of Greek and Roman Antiquities''), 723-724쪽, 윌리엄 스미스, D.C.L., LL.D. 존 머레이가 출판함, 런던, 1875. 웹사이트 기록 2006년 12월 8일. 확인일자 2007년 3월 24일.</ref> 정무관직은 원래 귀족 출신으로 제한되었으나 나중에는 [[로마의 평민|평민]]에게도 개방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1>Livy II</ref> 공화정의 민회로는 [[로마 왕정|왕정 시대]]에 기원을 두며, 전쟁과 화의 여부를 결정하고 요직 관리를 선출하는 [[켄투리아회]](''comitia centuriata''), 하위직 주요 관리를 선출하는 트리부스회(''comitia tributa'')가 있었다.<ref>애드킨스, 1998년. p.39.</ref>
 
로마는 점차 에트루리아 등 [[이탈리아 반도]]의 다른 나라를 정복하게 되었다.<ref>헤이우드, 1971년. pp.350-358.</ref> 그중 베이 점령은 라티움 밖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징표가 되었으며 그 이후 로마는 이탈리아 내에서 팽창을 거듭한다. 이후 삼니움 족의 캄파니아 칩입에 개입하여 3차 삼니움 전쟁을 치루었고 여기서 승리한 로마는 중부 이탈리아의 패자가 된다.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앞두고 로마의 지배권에 마지막 도전장을 던진 세력은 그리스 식민시 [[타란토|타렌툼]]이었다. 기원전 281년 타렌툼은 [[에페이로스의 피로스]]를 끌어들여 로마와 싸웠으나 결국 패배했다.<ref>[http://www.livius.org/ps-pz/pyrrhus/pyrrhus02.html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 (2)] 와 [http://www.livius.org/ps-pz/pyrrhus/pyrrhus03.html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 (3)] 요나 렌더링(Jona Lendering). Livius.org. 확인일자 2007년 3월 21일.</ref><ref>헤이우드, 1971년. pp.357-358.</ref> 로마는 정복을 통해 전략 요충지에 [[로마의 식민시]]를 건설하여 이탈리아에 안정적인 지배권을 확립했다.<ref>헤이우드, 1971년. p.351.</ref> 기원전 3세기 후반에 로마는 3차에 걸쳐 [[포에니 전쟁]](BC 264 - BC 146)에서 카르타고와 격돌했다. 1,2차 포에니전쟁에서는 초반에 카르타고가 우세했으나 결국은 로마가 승리하면서 로마는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해외 영토인 [[시칠리아]]나 [[에스파냐]] 등지를 정복한다. 후에 3차 포에니전쟁에서는 카르타고가 로마와 맺은 협약을 위반하여 로마의 침공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카르타고]]는 완전히 멸망하여 폐허가 되고 만다. 이로서 로마는 서지중해의 패권을 거머쥐었다.<ref>헤이우드, 1971년. pp.376-393.</ref><ref>[http://www.wsu.edu/~dee/ROME/PUNICWAR.HTM 로마: 포에니 전쟁] 리차드 후커 씀. 워싱턴 주립 대학. 1999년 6월 6일. 확인일자 2007년 3월 22일.</ref> 기원전 2세기에는 [[마케도니아 왕국]]와 [[셀레우코스 왕국]]을 물리치면서 [[지중해]] 세계를 제패했다.<ref name=Bagnall>Bagnall 1990</ref><ref>[http://www.wsu.edu/~dee/ROME/CONQHELL.HTM 로마: 헬레니즘 제국을 정복] 리차드 후커, 워싱턴 주립대학, 기록일자 1999년 6월 6일, 확인일자 2007년 3월 22일.</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