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카르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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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년]] 오스트리아의 귀족들은 블라디슬라프의 동생인 오타카르를 오스트리아에 초대했다. [[1252년]] [[2월 11일]] 오타카르는 [[하인부르크안데어도나우]](Hainburg an der Donau)에서 프리드리히 2세 공의 언니인 마르가레테(Margarete)와 결혼했다. [[1253년]] 바츨라프 1세가 사망하면서 보헤미아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1254년]]에는 [[독일]]의 국왕이었던 [[콘라트 4세]]의 뒤를 이어 독일의 국왕으로 즉위하려고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보헤미아의 국왕에 즉위한 이후에는 [[보헤미아 왕국]]의 영토를 [[모라바 변경백국]], [[오스트리아 공국]],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케른텐 공국]], [[크라인 공국]], [[프리울리 변경백국]], 빈디셰마르크(Windische Mark)으로 확장해 나갔다. 오타카르 2세는 [[프로이센]]의 십자군을 지원하면서 이교도가 소유하고 있던 도시들을 점령했다. [[1255년]]에는 튜턴 기사단이 오타카르 2세를 기념하기 위해 [[쾨니히스부르크]](현재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의 도시를 세웠다. [[1266년]]에는 에게를란트(Egerland)를 점령했고 [[1268년]]에는 케른텐의 울리히 3세(Ulrich III)와의 상속 계약을 체결하면서 케른텐, 크라인, 빈디셰마르크를 획득했다. [[1272년]]에는 프리울리를 획득했다.
 
[[1273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선거가 실시되었지만 황제로 선출되지는 않았다. [[1274년]] 11월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신성 로마 제국 회의에서 루돌프는 프리드리히 2세가 사망한 이후에 바뀐 신성 로마 제국의 모든 영토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을 것을 명령했다. [[1275년]] 루돌프는 오타카르 2세를 신성 로마 제국의 적으로 규정하는 한편 [[빈]]의 호프부르크(Hofburg)에 있던 오타카르 2세의 거처를 포위했다. [[1276년]] 11월 오타카르 2세는 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공작령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 이에 따라 오타카르 2세가 소유한 영지는 보헤미아, 모라바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