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서석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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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석문(石門) 정영방은 29세가 되던 해인 1605년(선조 38)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이 즉위한 이후 실정(失政)이 계속되고 당파싸움이 심해지자 벼슬을 단념하고 진성(眞城) 임천(臨川)(현 영양군 입압면 연당리)으로 들어갔다. 이곳에 연못을 판 것을 서석지(瑞石池)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정자인 경정(敬亭), 서재인 주일재(主一齋), 그리고 서하헌(棲霞軒), 수직사(守直舍) 등을 함께 축조하였다. 연못의 북변북변에는 주일재(主一齋) 주일재 앞으로 연못쪽으로 돌출된 석단을 만들어 사우단(四友壇)으로 이름을 지었고, 이곳에 소나무(松), 대나무(竹), 매화(梅), 국화(菊)를 심었다 한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