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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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미니누스는 채 30세가 되지 않았으며, 스스로 열렬한 친 그리스파(필헬레니즘)로 공표할 정도였다. 그는 전쟁 승리를 위한 새로운 로마 정책을 도입했다. 그때까지 로마는 필리포스에게 그리스 남부 도시들을 공격하는 말 것을 요청했을 뿐이었다.(‘그리스의 평화’) 이제 플라미니누스는 자신을 제한하고 있는 남부 그리스 도시에서 모든 수비대를 철수시키고 자신을 마케도니아(‘그리스인을 위한 자유’)에 국한시켜야한다고 요구했다.
 
[[기원전 198년]], 플라미니누스는 필리포스를 상대로 강력한 작전을 벌여 [[테살리아]]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전통적으로 마케도니아에 우호적이었던 [[아카이아 동맹]]의 도시들은 그때까지 [[스파르타]]와의 전쟁으로 당시의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에 참여하기에는 너무 빠듯했다. 필리포스를 상대로 한 로마의 성공은 그들에게 친 마케도니아적인 입장을 포기하게 했다. 아르고스의 옛 아르가이 왕조(''Argead dynasty'') 출신의 [[아르고스]]인들과 같은 일부 다른 이들은사람들은 여전히 친 ​​필리포스 입장을 견지했다.
 
==플라미니누스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