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1927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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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제철은 조업개시 6개월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1기의 성공을 바탕으로 1978년 두 번째 신화인 광양제철소 계획을 세웠다. 1982년 광양제철소를 완공한 포스코는 10년 후 2,100만톤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원조 철강왕'인 카네기는 35년에 걸쳐 연산 조강 1,000만톤을 이뤘지만, '한국의 철강왕' 박태준은 25년(1968년~1992년)만에 기술도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2,100만톤을 달성했다. 이로 인해 세계 철강업계로부터 그는 '신화창조자'(Miracle-Maker)'라는 칭송을 받았다. (한국일보 신문)
 
* 포스코는 "한강의 기적"으로 칭해지는 기적적인 경제 성장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동차,조선업등 각종 기간 산업들은 포스코에서 공급하는 철강 제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1970년대 이후 40년간의 급속한 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NEW YORK TIMES신문
 
* "박태준이 미국인이였다면, 사람들은 철강왕 [[카네기]] 보다 박태준을 기억할 것이다" MIT 공과대학 학장 J.MORGAN
 
* 전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와 미테랑]]은 "한국이 군대를 필요로 할 때 장교로 투신했고, 기업인을 찾았을 때 기업인이 됐으며, 미래 비전이 필요할 때 정치인이 됐다"며 "박태준에게는 한국에 봉사하는 것이 지상 명령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