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비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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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력 ==
폴리비오스의 아버지 리코르타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페르세우스 (마케도니아)|페르세우스]]와 로마가 전쟁을 벌일 때 중립을 주장한 파당의 우두머리였다. 때문에 그는 로마인의 의심을 받아 기원전 168년 로마에 인질로 데려가는 [[아카이아]] 귀족 1000명에 포함되고 말았으며 그곳에서 17년간 억류되었다. 로마에서 그는 높은 교양 수준 덕분에 로마의 유력 가문에서 인정받았다.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승리한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그에게 자신의 아들 파비우스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장남으로 입양된 사람이다. 소 스키피오라고도 한다)의 교육을 맡겼다.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무찌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교사로서 폴리비오스는 스키피오와 오랜 우정을 나눴으며 조언자 역할도 했다. 소 스키피오는 기원전 146년 결국 카르타고를 파괴한다. 그 전인 기원전 150년에 아카이아인 인질이 석방되었을 때, 폴리비오스도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에 그는 자신의 친구와 아프리카로 가서 카르타고 함락을 지켜보며 이를 기록했다. 카르타고 멸망 후에 아마 그는 [[히스파니아]](에스파냐)와 아프리카 대서양 해안으로 여행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코린토스]]가 파괴된 후 그는 그리스로 돌아와 자신의 연줄을 이용해 그곳 상황을 완화하고자 하였다. 폴리비오스는 그리스 도시에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마련하는 어려운 일을 맡았으며, 이 직위로 그는 높은 신망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