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상륙 작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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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동시에 맥아더는 군산에 상륙할 것이라는 거짓정보를 흘렸으며, 이 정보에 속아넘어간 인민군들은 [[군산]]의 방어를 강화하면서 다른 지역의 경계가 허술해졌다.
저우언라이는 김일성에게 "인천을 조심하라"고 전문을 보냈으나, 빨찌산 중대장 출신으로 백명 미만을 지휘한 경험밖에 없는 쏘련군 대위 출신인 김일성이 상륙작전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는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북한군이 인천에 유엔군이 상륙할 때를 대비해보내 서해안 방어사령부를 신설하고 제18사단과 해군과 공군에서 차출한 육전대 병력 등으로 여러 방어용 신규 부대를 편성하는 한편 월미도에 해군 인원들로 구성된 방어진지를 만드는 등의 준비는준비를 했으나 제대로막을 될리가수는 없었다.
 
9월 15일, 작전개시일에 함정 206척, 7만여 명을 동원하여 [[영흥도]] 근처에 집결, 작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