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유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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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16 쿠데타]] 이후 [[1963년]]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1967년]]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직을 1차에 한하여 중임이 가능하게 하였으나, 박정희는 [[1969년]] [[3선개헌]]을 통하여 [[1967년]]에 이어 [[1971년]]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여러분께 다시는 나를 찍어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였는데, 이에 상대 후보였던 [[김대중]]은 '박정희가 헌법을 고쳐 선거가 필요없는 총통이 되려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국제정세를 보면 1969년 닉슨은 베트남전 패배로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이 책임지라는 닉슨독트린을 발표한다
{{위키문헌|10월 17일 대통령 특별 선언}}
 
한국에서도 미군철수가 시행된다 미7사단이 1971년 철수를 시작으로 전원철수를 한다는계획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는 당시 한국에 엄청난 충격이었고 당시만 해도 북한이 전력상 한국보다 위였다 안보위기를 맞은 박정희는 체제강화에 나서야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고 봐야한다{{위키문헌|10월 17일 대통령 특별 선언}}
[[파일:10월 유신을 발표하고 있는 김성재.jpg|thumb|10월 유신을 발표하고 있는 당시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
김대중을 가까스로 누르고 대통령에 3선된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하고 [[대한민국 국회|국회]]를 해산한 후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헌법]]의 일부 기능을 정지시키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계엄사령부가 설치되었고, 계엄사령부는 포고를 통하여 정치활동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절 금지하고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 검열을 받도록 하며, [[대학]]들을 휴교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