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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는 [[당나라]]가 [[668년]] [[평양]]에 설치한 [[군정기관]]으로,군정 기관이다. [[7세기]] 말에 [[한반도]]의 격변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라의 저항을 받아 [[랴오둥|요동]] 지방으로 이동한 뒤 7번이나 다시 옮기다가 [[756년]]에 폐지되었다.
 
[[경상북도]] [[안동시]]와 한자는 같지만 상관없다. 경상북도 안동은 조선시대 때 '안동대도호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는 [[당나라]]가 [[668년]] [[평양]]에 설치한 [[군정기관]]으로, [[7세기]] 말에 [[한반도]]의 격변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라의 저항을 받아 [[랴오둥|요동]] 지방으로 이동한 뒤 7번이나 다시 옮기다가 [[756년]]에 폐지되었다.
한편 [[경상북도]] [[안동시]]와 한자는 같으나, 전혀 관계는 없다.
 
== 역사 ==
안동도호부는 당나라의 [[6도호부]] 가운데 하나로,하나로서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멸망당한멸망한 후 짧은 기간 동안 한반도에 설치된 구역으로,설치되었다. 당나라의 장군 [[설인귀]]가 초대 도호로 임명되어임명되었고, 고구려 전 영토를 9도독부(都督部) 42주(州) 100현(縣)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한편 당나라는 안동도호부를 통해 옛 고구려와 [[백제]]의 땅뿐만 아니라 [[신라]]도 차지할 속셈이었으나, 이렇게 되자 당과 협력하여 백제·고구려를 멸했던 신라는 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두 나라의 옛 땅을 에워싸고 당과 여러 해를 두고 대전하였다.
 
한편 당나라는 안동도호부를 통해 옛 고구려와 [[백제]]의 땅뿐만 아니라 [[신라]]도 차지할 속셈이었으나,속셈이었다. 이렇게 되자 당과 협력하여 백제·고구려를 멸했던 신라는 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두 나라의 옛 땅을 에워싸고 당과 여러 해를 두고 대전하였다.
신라는 당나라의 음모에 대비하여 [[검모잠]]의 고구려 부흥 운동을 지원하였으며, 또한 [[사비성]]을 당나라 군에서 탈환하고 그곳에 있던 [[웅진 도독부]]을 축출하였다. 이에 당나라는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을 신라의 왕으로 선언하였으나, 군사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다.
 
마침내 신라는 안동도호부를 [[676년]](문무왕 16년)에 한반도에서 쫓아내었고, 진정한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신라는 당나라의 음모에 대비하여 [[검모잠]]의 고구려 부흥 운동을 지원하였으며,지원하였다. 또한 [[사비성]]을 당나라 군에서 탈환하고 그곳에 있던 [[웅진 도독부]]을 축출하였다. 이에 당나라는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을 신라의 왕으로 선언하였으나,선언하였다. 그러나 군사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다. 마침내 신라는 안동도호부를 [[676년]](문무왕 16년)에 한반도에서 쫓아냈다.
 
당나라는 도호부의 거점지를 요동 고군성(故郡城)에 옮겼고, 이듬해에는 요동의 신성(新城)으로 옮겼다가 한때 폐지하기도 했다. 당나라는 [[699년]] 안동도독부로 격하하여 개칭하였고, [[보장왕]]을 요동주 도독 조선왕(遼東州都督朝鮮王)으로 임명하고 다스리게 하였다. 보장왕은 [[말갈]]과 함께 고구려 부흥을 시도하였으나 발각되어 유배되었다. 그러나 보장왕의 자손들은 몇 세대에 걸쳐 도호부를 다스렸다. 보장왕의 후손들은 안동도호부에서 자립한 반독립국인 [[소고구려]]를 세웠다. 소고구려는 후일 [[발해 선왕]]에 의해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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