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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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플라타이아이 전투}}
 
이듬해인 [[기원전 479년]] 봄, 마르도니우스는[[마르도니우스]]는 마케도니아의[[마케도니아]]의 알레산드로스[[알렉산드로스 1세를1세]]를 보내어 그리스와 협정을 맺으려 하였으나 그리스인들은 이를 거부했다. 아테나이는 이번에도 시가지를 비우고 해상에서 승부를 거는 작전을 세웠고, 스파르타의 [[파우사니아스]] 왕이 지휘하는 5만 명의 그리스 연합군은 테바이 근처의 [[플라타이아]] 평원에서 페르시아 군과 전투를 벌였다. 전투는 혼전이었지만 스파르타와 테게아군의 용맹으로 대세는 그리스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마르도니우스는마르도니우스가 전사하고 페르시아군은 퇴각했다. 페르시아군은 퇴각하면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1세의 매복에 걸려 대부분이 소아시아로[[소아시아]]로 건너가지 못하고 죽었다. 한편 바다쪽에서 해군도 플라타이아 전투가 벌어진 날 페르시아의 해군을 섬멸했다.
 
같은해같은 해 그리스는 반격에 나섰는데 아테나이의 해군을 주축으로한 그리스 연합함대는 에게해를 지나 소아시아로 침공했고 그리스계 도시국가를도시 국가를 해방시켰다. 이후 30년간 크고 작은 페르시아와 그리스사이에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는데 아테나이의 주도로 새로 결성된 [[델로스 동맹]]은 [[아나톨리아]] 해안에 있는 이오니아계 도시국가들을 페르시아의 지배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계속 공세를 펼쳤는데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 [[기원전 448년]]경에는 마침내 아테나이와 그 동맹국 및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사이에 협정이 맺어졌다.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