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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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99년 당시 [[밀레토스]]의 참주 [[아리스타고라스]]는 페르시아의 도움을 받아 [[낙소스 섬]]을 정복하고자 [[낙소스 공방전 (기원전 499년)|원정대]]를 보내었다. 그러나 원정대는 패주하였고, 아리스타고라스는 생각을 바꾸어 (별 어려움 없이)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소아시아]]의 [[고대 그리스|헬라스]] 지역 전체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선동하였다. 그리하여 [[이오니아 반란]]이 일어나 기원전 493년까지 이어졌는데, 점점 소아시아의 더 많은 지역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아리스타고라스는 [[아테나이]]와 [[에레트리아]]의 군사적 지원을 확보하고 기원전 498년에 이들 군대의 도움으로 페르시아의 지역 도읍인 [[사르데이스]]를 점령하여 불태웠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은 이런 일을 한 아테나이와 에레트리아에 복수하기로 맹세하였다. 반란은 계속되어 기원전 497년~495년 사이에 양측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기원전 494년에 페르시아는 다시 군대를 일으켜 반란의 중심지인 밀레토스를 공격하였다. [[라데 전투]]에서 이오니아는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여 반란군은 몰락하였고, 이듬해에 마지막 저항도 진압되었다.
 
다리우스는 자신의 제국 땅에서 다시는 반란이 일어나고 본토 그리스인이 개입하는 일을 막기 위하여 그리스를 달래고 사르데이스를 불태운 아테나이와 에레트리아를 주벌할 계획에 착수하였다. 기원전 492년에 [[제1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페르시아는 처음으로 그리스를 침공]]하였는데, 페르시아 장군 [[마르도니오스]]는 [[트라케]]와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를 복속하였으나 여러 불상사로 조기에 작전을 끝내야하였다.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의 두 번째 군대가 [[다티스]]와 [[아르타페르네스 (아르타페르네스의 아들)|아르타페르네스]]의 지휘 하에 그리스로 출정하였는데, 이번에는 [[에게 해]]를 건넜다. 페르시아 원정군은 [[퀴클라데스 제도]]를 점령하고 [[에레트리아]]를 포위한 끝에 함락하여 파괴해버렸다. 그러나 페르시아군은 아테나이를 공격하는 길에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나이에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아서 페르시아의 노력은 당분간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자 다리우스는 그리스를 완전히 정복할 계획을 세웠으나, 기원전 486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리스 정복의 과업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넘어갔다. 기원전 480년에 크세르크세스는 몸소 원정길에 나서 터무니없이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두 번째로 그리스를 침공]]하였다. 페르시아는 유명한 [[테르모퓔라이 전투]]에서 ([[스파르타]]와 아테나이가 주도한) 그리스 연합군을 무찔러 그리스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였으나, 연합군 함대를 파괴하려다 페르시아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하였다. 이듬해 헬라스 연합군은 반격에 나서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퇴하고 그리스 침략을 막아내었다.
 
헬라스 사람들은 여세를 몰아 [[소스테스]](기원전 479년)과 [[뷔잔티온]](기원전 478년)의 페르시아 주둔군을 몰아내고 [[뮈칼레 전투]]에서 남은 페르시아 함대를 격침하였다. 뷔잔티온 공성전에서 [[파우사니아스 (장군)|파우사니아스]] 장군의 행동으로 여러 그리스 국가가 스파르타를 멀리하게 되었으며, 反페르시아 연합은 아테나이가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으로 재조직되었다. 델로스 동맹은 이후 30년간 페르시아에 대항한 전쟁을 계속하여 유럽에 남은 페르시아 주둔군을 몰아냈다. 기원전 466년 [[에우뤼메돈 전투]]에서 델로스 연맹은 두 번의 승리를 거두어 결국 이오니아 도시들의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일어난 반란(기원전 460년~454년)을 지원하려고 델로스 동맹이 개입하다가 크게 패하고 원정을 중단하였다. 기원전 451년에는 [[퀴프로스]]에 함대가 파견되었으나 별 소득을 얻지 못하고 철수하면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은 조용하게 끝나버렸다. 어떤 사료에서는 전쟁 상태가 종료된 것이 아테나이와 페르시아간의 소위 칼리아스 조약이라는 평화 협정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