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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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국의 역사}}
=== 고대에서 근대까지 ===
이 나라의 위치에 고대에는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더 정확하게는 현재 [[둥베이]]의 일부분도 포함했다). 고조선 멸망 이후 [[한사군]]이 설치되었으나 이후 [[고구려]]의 영토로 복속했다. [[장수왕]]은 [[국내성]]에 있던 [[고구려]]의 수도를 [[평양성]]으로 옮겼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 [[대동강]] ~ [[원산만]] 이북은 [[당나라]]가 차지했으나, 곧 [[발해]]에 복속했다. 한편 그 이남 지역인 [[황해도]] 지역은 [[신라]]가 차지했다. [[고려]] 때에 [[평양]]은 “서경”(西京)으로 불렸으며, 수도인 [[개경]]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다. 승려 [[묘청]]은 한 때 서경으로 천도할 것을 왕에게 건의하였으나 실패하자 난을 일으켜 [[대위국]]을 세웠으나 곧 망했다. 한편 [[함경도]] 지역은 [[고려]]가 차지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여진족]] 등의 치하에 있었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는 “동북면”(東北面)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었으며, 지금의 [[함경도]] 일원이다. [[팔도|8도제]]가 도입되면서 [[평안도]]와 [[함경도]]가 설치되었다. [[김종서 (1383년)|김종서]]와 [[최윤덕]]은 [[조선 세종|세종]]의 명을 받아 [[여진족]]을 몰아내고 4군 6진을 개척하여 북쪽으로 오늘날과 거의 동일한 경계를 만들었다.
이 나라의 위치에 고대에는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더 정확하게는 현재 [[둥베이]]의 일부분도 포함)했다.
고조선 멸망 이후 [[한사군]]이 설치되었으나 이후 [[고구려]]의 영토로 복속했다. [[장수왕]]은 [[국내성]]에 있던 [[고구려]]의 수도를 [[평양성]]으로 옮겼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 [[대동강]] ~ [[원산만]] 이북은 [[당나라]]가 차지했으나, 곧 [[발해]]에 복속했다. 한편 그 이남 지역인 [[황해도]] 지역은 [[신라]]가 차지했다. [[고려]] 때에 [[평양]]은 “서경”(西京)으로 불렸으며, 수도인 [[개경]]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다. 승려 [[묘청]]은 한 때 서경으로 천도할 것을 왕에게 건의하였으나 실패하자 난을 일으켜 [[대위국]]을 세웠으나 곧 망했다. 한편 [[함경도]] 지역은 [[고려]]가 차지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여진족]] 등의 치하에 있었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는 “동북면”(東北面)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었으며, 지금의 [[함경도]] 일원이다. [[팔도|8도제]]가 도입되면서 [[평안도]]와 [[함경도]]가 설치되었다. [[김종서 (1383년)|김종서]]와 [[최윤덕]]은 [[조선 세종|세종]]의 명을 받아 [[여진족]]을 몰아내고 4군 6진을 개척하여 북쪽으로 오늘날과 거의 동일한 경계를 만들었다.
 
특히 [[관서 지방]]에서는 외래사상이 일찍 유입되어 선천(宣川)·정주(定州)를 중심으로 [[개신교]]가 전파됨에 따라 많은 개신교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당시 개신교는 관서지방에서 보수적 관료층이 아닌 근대화의 경향을 강하게 지녔던 자립적 중산층에 의해 수용되었고, 이 자립적 중산층은 기독교를 믿음으로써 나라의 모든 모순을 제거하고 개화를 이룩하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따라서 관서지방의 기독교적 전통은 상당히 강하였다. 또한 관서 지방의 대표격인 평양에서 1907년에 [[평양 대부흥]]이 일어나서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였다.
 
=== 대한제국 ===
근대 한국을 가르는 기준으로는 [[1862년]]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즉위식을 시작으로 구분되지만,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등 여러 이견이 있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1919년 3.1운동에 따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현재 대한민국의 기원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