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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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
오랫동안 골칫거리였던 그리스와의 관계를 안정시킨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는 또 다른 문제였던 [[이집트]]에 대처했다. [[기원전 375년]]경, [[킬리키아]]의 [[사트라프]] [[다타메스]]를 이집트 정벌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지만, 다타메스가 자신의 권세를 확대하자 의구심을 품고 그를 해임하고, 대신 [[파르나바조스]]와 아테네인 [[이피크라테스]]를 이집트 원정에 출전시켰다. 그러나 그리스의 원병을 얻게 된 이집트의 격렬한 저항에 부닥쳐 원정은 실패로 끝났다. 그동안 동방에서는 카두시오이 인의 반란이 일어나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친정을 했다.
 
[[기원전 370년]]에는 서쪽에서 다타메스가 ‘[[사트라프]]의 대반란’이라 불리는 반란을 일으켰다. 예전에는 이 반란으로 페르시아의 지배 체제가 크게 흔들린 것으로 간주했었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대반란이 일어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각지의 사트라프에 큰 권한을 부여하였다. 예를 들어 [[카리아]]의 사트라프 [[마우솔로스]]는 거의 독립 상태였다. 이런 상태가 [[아테네]]와 [[테베]]에서 보면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그리스에서의 세력 신장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영향을 받은 역사로 해석된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는 후계자로 다리우스를 지명하고 있었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다른 아들 오코스는 형 다리우스와 아리아스페스를 살해했다. 늙고, 무력해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는 이를 묵인하였고, [[기원전 359년]]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사후 오코스가 왕위에 오르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를 자칭했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