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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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씨 세도가의 수장 ===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민승호에게 충정이란 시호를 내렸다. 그런데 민승호에겐 뒤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민비는 가까운 친척을 배척하고 촌수가 좀 먼 [[민태호]]의 아들 민영익을 양자로 삼겠다고 했다.<ref name="hwang40">황현, 《매천야록》 (정동호 역, 일문서적, 2011) 40페이지</ref> 그러자 [[민태호]]는 반대하였고 그의 동생 [[민규호]]가 형을 협박했다. "천의(왕후의 뜻)를 어찌 감히 어기겠소? 양자를 보내어 함께 부귀를 누리는 것도 좋지 않겠소이까?" 그래서 [[민태호]]의 아들 영익은 [[민승호]]의 양자로 들어갔고, 뒤이어 [[민규호]]는 [[이조판서]] 겸 도통사가 되었다.<ref name="hwang40"/>
 
민씨 척족의 수장으로 세도를 부리던 민승호가 갑자기 폭사하자, 사람들은 [[흥선대원군]]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민승호와 그의 아들이 동시에 폭사했으므로 민씨 일족들은 자신의 아들을 민승호의 사후 양자로 세우기 위해 각자 암투와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민비는 만약을 대비하여 오빠의 사후 양자로 민영익을 일찌감치 점지해둔 상태였다.<ref name="jy200905"/> 민태호는 아무리 일가라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양자로 줄 수 없다고 버텼지만, 민규호 등과 민비의 거듭된 설득으로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ref name="jy200905"/> 민태호는 품에서 아들을 잃은 대신 권세를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민비는 친정아버지의 제사를 받드는 유일한 혈육인 민영익을 끔찍이 아꼈다. 촌수로는 조카였지만, 나이 차이가 9세밖에 나지 않았기 때문에 친동생처럼 친하게 대했다.<ref name="jy20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