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티노 공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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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상자 1차대전 이탈리아 전선}}
 
'''트렌티노 공세''' 또는 '''아시아고 전투'''는 이손초 강의 이탈리아군을 격파하고 전쟁의 주도권을 잡고자 [[오스트리아-헝가리]]가 [[1915년]] [[5월 14일]]부터 벌인 공격으로 시작된 전투다.
 
1915년 [[이탈리아]]가 연합국으로 참전한 이후 이탈리아군 참모총장 [[루이기 카도르나]](Luigi Cadorna )는 1916년 중순까지 5차례나 [[이손초 강]](Isonzo River)일대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기 위해 공세를 감행했지만 막대한 병력손실을 입고 번번이 실패만 하였다. 오스트리아군은 이탈리아군에 비해 좀 적은 병력손실을 손실을 입었지만 오스트리아군 역시 피해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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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베네토 주]]와 [[베네치아]]는 서쪽에는 오스트리아령 [[티롤]](Tylor)과 [[트렌토]](Trento), 북쪽은 [[알프스 산맥]], 동쪽은 이손초 강과 맞닿아있어 오스트리아에게는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화살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령 트렌티노(Trentino) 역시 이탈리아에게 있어서는 눈에 거슬리는 돌출지역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지역은 서로를 향한 비수로 서로에게 눈에 거슬리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런던 밀약 때도 이탈리아가 연합국이 되는 대가로 이 지역을 할양받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는 각각 병력을 그 지역에 배치시켰다. 그런데 이탈리아군이 이손초 강에서 공세를 취하는 까닭에 전투는 이손초 강 일대에서만 벌어지게 되었다. 동쪽의 러시아군 및 [[발칸 반도]]의 세르비아와도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던 까닭에 상대적으로 병력이 적은 오스트리아군은 이손초 강에서는 수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오스트리아군 참모총장 [[콘라드 폰 회첸도르프]](Konrad von Hoetzendorf)는 이손초 강에는 이탈리아군 주병력이 배치돼 있기 때문에 트렌티노와 맞닿아있으면서 병력이 허술한 [[아시아고]](Asiago)일대에 공격을 하기로 하였다. '''아시아고 전투'''라고 불리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 공격은 우선 이손초 강에서 이탈리아군의 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이었고 만약 베네토 주의 주요도시들인 베네치아와 [[베로나]](Verona,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유명한 곳) 등을 함락시키게 되면 후방 지원이 끊어진 이손초 강 일대의 이탈리아군을 섬멸하는 것이 최종목적이었다. 전형적인 포위 섬멸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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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16년 분쟁]]
[[분류:1916년 이탈리아]]
[[분류:1916년 오스트리이-헝가리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