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포스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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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아리다이오스는 마케도니아 궁정에서 오랫동안 그늘로 존재했지만, [[기원전 323년]]에 동생 알렉산더가 급사했기 때문에 사태가 급선회한다. 당대에 대제국을 이룩하면서 32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한 알렉산더는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고, 게다가 그의 유언은 “가장 강한 자가 내 뒤를 어어야지”라는 것이어서, 여러 장군들을 매우 곤혹하게 했다.
 
알렉산더의 사후 그 신하들은 바빌론에서 향후의 체제를 결정하는 회의를 열었다. ([[바빌론 회의]]) 당시 혈통 상 알렉산더와 가장 가까운 후계자로서는 우선 알렉산더의 후궁 바르시네가[[바르시네]]가 낳은 [[헤라클레스]]가 있었지만 어린데다 [[서출]]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무장 [[네아르코스]]가 그를 추천했지만 찬동하는 자는 전무하였다고 한다. 알렉산더의 왕비 [[록사네]]는 당시 임신 6개월이었지만, 물론 태어날 아이의 성별도 모르는 상태에서 후계자로 삼을 수는 없었다. 장군 [[페르디카스]]는 일단 그녀가 출산할 때까지 결정을 미루기로 제안했지만, [[프톨레마이오스]]는 어쨌든 이방인의 혈통으로 삼는 왕자의 상속을 반대하며 중신들의 합의제를 제안했다. 무장 [[멜레아그로스]]는 다른 사람들의 말다툼을 일축하고, 재빨리 군대를 장악하려 하였다.
 
[[쿠르티우스 루푸스]]에 의하면, 이때 무명의 병사가 갑자기 [[아리다이오스]]라는 이름을 외쳤고, 그가 왕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의견에 동조하였고, 단번에 대세는 아리다이오스로 기울었다. 당시 [[바빌론]]에 있던 아리다이오스를 즉시 데려왔는데, 필리포스의 이름으로 환호를 받자 [[멜레아그로스]]는 즉각 아리다이오스의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후견인으로서 사실상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두려움을 느낀 [[페르디카스]]와 멜레아그로스 사이에서 하마터면 내전이 시작될 뻔했지만, 이때 아리다이오스는 병사들에게 전투를 끝내도록 설득하고 분쟁을 훌륭하게 막았다. 그러나 며칠 후 군대를 정화하는 의식을 하던 중에, 페르디카스의 손에 의해 멜레아그로스는 지지자 함께 제거되었다.
 
이렇게 페르디카스가 일단 주도권을 잡고, 무장들에게 각각의 관할 지역을 지정하고 제국을 분할했다. 아리다이오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3세로서 즉위했지만, 대왕의 왕비 [[록사네]]의 출산을 기다리며 태어날 아이가 남자 아이라면 아리다이오스와 공동통치자가 되도록 결정되었다.
 
===허수아비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