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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군'''(寧城君, [[1606년1605년]] [[음력 12월 24일]] ~ [[1649년]])은 [[조선]]의 왕족이다. [[조선 선조|선조]]와 [[온빈 한씨]]의 아들이다.
 
== 생애 ==
1606년1605년(선조 39년38년) 음력 12월 24일 조선의 제14대 [[왕]] 선조와 [[후궁]] 온빈 한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ref name="ys">[http://www.rfo.co.kr/html/pachong_view.php?mode3=history&No=95 전주이씨대동종약원 - 영성군 약사]</ref>. [[성씨|성]]은 [[이씨|이]], [[이름]]은 계(㻑),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이다. [[흥안군 (1598년)|흥안군]]과 [[경평군 (이륵)|경평군]], [[정화옹주]]의 친동생이며. [[조선 광해군|광해군]], [[조선 원종|원종]]([[조선 인조|인조]]의 아버지) 등과는 이복 형제이다.
 
1632년(인조 10년) 음력 6월 15일 영성군의 종이 무단으로 감옥에 들어가 갇혀있던 죄수들을 시켜 관원들을 욕보이게 하여 물의를 빚었다. 당시 대간들은 영성군의 종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였으나, 인조는 별다른 처벌 없이 지나갔다<ref>《조선왕조실록》인조 26권, 10년(1632 임신 / 명 숭정 5년) 6월 15일(신사) 1번째기사</ref>. 또 이듬해 열린 [[인목왕후]] 연제<ref>練祭. 사후 1년이 되는 날 지내는 제사인 소상이 끝나는 때의 의식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401&cid=41826&categoryId=41826 《한국고전용어사전》〈변제〉 항목] 참고</ref>에는 경평군과 함께 병을 핑계로 불참하여 또 탄핵을 받았으나, 이때에도 인조의 배려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ref>《조선왕조실록》인조 28권, 11년(1633 계유 / 명 숭정 6년) 7월 6일(병신) 2번째기사</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