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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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3세'''([[기원전 380년]] ~ [[기원전 330년]], [[페르시아어]] داریوش ''다리우슈'')는 [[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기원전 336년]]부터 [[기원전 330년]]까지 재위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으로 폐위되었고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했다.
 
==생애==
[[기원전 338년]]에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의 환관이자 재상인 [[바고아스]]는 쿠데타를 일으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를 처형하고, 2년 후에는 유배된 그의 아들 [[아르세스]]마저 처형했다. 바고아스는 자신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자를 왕에 앉히려고 왕가에서 갈라져나온 먼 친척인 코도만누스를'''코도만누스'''를 지정하여 왕에 임명했는데 그가 바로 다리우스 3세이다. 다리우스 3세의 아버지는 아트라크세르크세스의 조카였고 어머니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딸인 [[시시감비스]]였다.
 
다리우스 3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야심많은 환관의환관인 [[바고아스]]의 영향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했고 쿠데타를[[쿠데타]]를 꾸몄다획책했다. 이 말을 들은 바고아스는 독배를 왕에게 주어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 했으나, 다리우스는 그 잔을 도리어 [[바고아스]]에게 주어 죽였다. 다리우스 3세가 즉위했을 때 제국은 불안정하고 많은 땅을 지배하고 있는 속주 총독들은[[사트라프|태수]]들은 질투심이 많고 믿을 수 없는 상태였다.
 
[[기원전 337년]]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페르시아 지배 아래에 있는 [[고대 그리스|그리스]] 도시들의 해방을 위해 [[코린토스 동맹]]을 결성하고, 이듬해 [[소아시아]]에 선발대를 보냈다. 그러나 그해 7월에, 그는 배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암살당했고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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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33년]]에 다리우스는 직접 페르시아 내륙에서 대군을 모아 출전했으나 11월 [[이수스 전투|이수스]]에서 패배해 도망쳤고 그의 어머니인 [[시시감비스]]와 처자식들이 알렉산드로스의 포로가 되었다. 그 후 알렉산드로스에게 강화하자는 편지를 2번이나 보냈고 마케도니아와 페르시아가 동맹을 맺는 조건으로 막대한 재물을 주고, [[유프라테스 강]] 서쪽에 있는 페르시아 영토를 마케도니아에게 모두 넘겨주겠으며, 자기 딸과 결혼하라고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러한 강화의 제의를 다 거절하고 [[메소포타미아]]로 진격했다.
 
==최후==
이에 다리우스는 [[마케도니아 제국|마케도니아]] 군이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건너게 하고 [[기원전 331년]] [[10월 1일]]에 지금의 [[이라크]] [[모술]]의 동쪽에 있는 [[가우가멜라 전투|가우가멜라]]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크게 패해서, [[엑바타나]]로 피난하였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알렉산드로스]]가 추격하자 다시 동쪽으로 [[박트리아]]까지 피난하였지만 자신의 부하이자 바고아스의[[바고아스]]의 친척이었던 [[베수스베소스]] 일파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전기==
*Prevas, John. ''Envy of the Gods: Alexander the Great's Ill-Fated Journey across Asia''. Da Capo Press, 2004.
 
==바깥 링크==
*[http://www.gaugamela.com 다리우스의 상세 전기]
*[http://www.american-pictures.com/genealogy/persons/per01592.htm 다리우스의 족보]
*[http://www.pothos.org/content/index.php?page=darius-iii Pothos.org: 다리우스 III (코도만노스)]
 
{{전임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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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역대황제}}
{{Authority control}}
{{기본정렬:다리우스 3세}}
 
[[분류:페르시아의 역사]]
[[분류:페르시아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