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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 = 윤양중(이복 아우) <br /> 윤영모(이복 아우) <br /> 윤경모(이복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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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중'''(尹石重, [[1911년]] [[5월 25일]] ~ [[2003년]] [[12월 9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작가, 아동문학가로, 호는 석동(石童)이다. 그는 양정고보를 거쳐 [[1942년]]에 [[도쿄]] [[조치 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24년]] 《신소년》에 동요 〈봄〉, [[1925년]] 잡지 《어린이》에 동요 〈오뚜기〉가 당선된 후 많은 [[동요]]를 발표하였다.
 
== 생애 ==
[[서울]]에서 태어났다.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재학하였으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 운동이 발발하고, 이에 동참하지 못하고 졸업장을 받는 게 양심의 가책이 되어 <중외일보>에 '자퇴생의 수기'를 투고한 후 졸업을 며칠 앞두고 자퇴를 한다. [[1930년]] [[가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귀국을 하게 된다. 이후 [[1942년]] [[일본]] [[조치 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25년]] 잡지 어린이에 그의 동요 〈오뚜기〉가 당선된 뒤 많은 동요가사를 창작, 발표하였다. [[1933년]], [[방정환]]의 뒤를 이어 《어린이》 주간으로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활약하였다. 그 후 《소년중앙》·《소년》·《소학생》의 주간을 지냈으며 [[1955년]] 조선일보 편집 고문을 지냈다. [[1956년]] 새싹회 회장에 선출되고, [[1961년]] 3·1 문화상 예술 부문 본상과 [[1966년]]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1970년]] 어린이 회관 고문이 되는 등 아동들을 위한 많은 공헌을 하였다. 저서로 《윤석중 동요집》,《초생달》, 《굴렁쇠》, 《어린이를 위한 윤석중 시집》 등이 있다. [[1956년]] 새싹회 동요집 엄마손 등을 비롯하여 윤석중 동요집, 잃어버린 댕기 등 30여 편에 이른다. [[2003년]] [[12월 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 학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