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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는 참된 유월절 어린 양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유월절을 전후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구원의 예표인 유월절 기간은 점차 진정한 구원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바뀌어 갔다. 2세기부터 3세기까지 동방교회 특히 성 사도 요한과 필립보의 전통을 따르는 폴리카르포, 사르디스의 멜리토 등의 교부들은 유대적 전통과 신학적 예표 의미가 강한 유월절의 날짜인 니산월 14일을 그대로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삼자고 주장했으나, 서방교회는 부활이 일어난, 니산월 14일 후 바로 돌아오는 일요일에 지내는 것을 주장했다. 부활절 논쟁이라 불리는 이 논쟁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서방교회의 주장이 받아들여짐으로써 마무리되었다.(춘분 후 첫 보름달이 지난 주일)<ref name="부활절 논쟁-가톨릭 대사전">{{웹 인용|title=부활절 논쟁|url=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1280&keyword=%BA%CE%C8%B0%C0%FD+%B3%ED%C0%EF&gubun=01}}</ref> <ref name="과월절 예식">{{웹 인용|title=과월절 예식|url=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6608&keyword=%B0%FA%BF%F9%C0%FD&gubun=0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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