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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 최초의 주목할 만한 연구 활동의 부흥은 [[카롤루스 대제]]가 [[피사의 피에트로]]나 [[알퀸]]의 조언을 받아 당시 고대의 철학을 보존하고 있었던 [[잉글랜드]]나 [[아일랜드]]의 학자를 초빙하고, [[787년]]의 칙령에 의해서 제국 내의 모든 수도원에 학교를 병설시켰을 무렵에 시작한다. 이러한 학교(scola)는 [[스콜라 철학]]의 이름의 유래가 되어 중세의 연구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시기의 철학적 활동 중에서는 고대의 저작을 필사하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중세 성기]]의 [[스콜라 철학]]은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의 [[철학자]], [[신학자]], [[주교]]인 [[캔터베리의 안셀무스]]<small>([[1033년]] ~ [[1109년]])</small>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안셀무스는 [[신의 존재 증명#본체론적 증명|신의 존재의 존재론적인 증명]]을 처음으로 정식화한 인물로서 유명하다. 13세기 초기는 그리스 철학 부흥이 절정에 이르러, 버스의 아데 라드는 [[시칠리아]]나 아랍 세계를 여행해, 천문학이나 수학 문헌을 번역하였으며 그 중에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의 첫 완역도 포함된다. 13세기 중반의 모에르베케의 비렘에 의한 그리스 철학의 문헌의 번역, 편집은 고대 철학의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를 명확히 묘사히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 과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