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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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년 12월, 상서령이 되었다. 나중에는 사주목(司州牧)을 역임했다. 569년 12월 녹상서사(錄尙書事)가 되었다. 571년 2월 태위(太尉)가 되었다. 단소와 함께 백곡(栢谷)을 공격했다. 그리고 정양(定陽)을 공격했다. 단소가 병에 걸리면서 고장공은 단소의 군권을 이어받아 통솔했다. 전후에는 전공에 의해서 거록, 장락, 악평, 고양 지역의 식읍을 받았다. 572년 8월, 대사마가 되었다. 573년 4월 태보가 되었다.
 
고 장공은 그 용감함과 무훈등의 명성이 높아지자, 당시 황제였던 [[북주 후주|후주 고위]]에게 미움을 샀고, 자신이 숙청될 것을 두려워했고, 일부러 전리품을 탐하였고 평판을 안좋게하였고, 전공을 세우는 것을 꺼리게 하였고 병에 걸려도 일부로 치료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라를 내 집같이 생각한다." 라는 실언을 하였는데, 당시에는 황제만이 국가를 집이라 칭할수 있슴으로 모반의 뜻이 있다고 의심받았다. 573년 5월 후주로 부터 독약을 받아 자살했다. 이때 왕비인 정씨(鄭氏)가 "이제라도 폐하에게 해명를해명을 못하나요 "라고 울면서 호소했지만, 고장공은 "이제 와서 어떤 호소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대답하였고, 재산을 부하에게 나누어 주었고, 아무말 없이 죽음을 당하였다. 시호는 무왕(武王)이다..
 
== 가족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