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켈리아 원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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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스테네스와 에우리메돈은 73척의 배와 5,000명의 중장보병을 이끌고 함께 도착했다. 아테네 함대가 도착하자 항구에서 80척의 시라쿠사이 함대가 이들을 공격했다. 해전은 이틀 동안 이어졌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시라쿠사이 함대는 퇴각하는 척하다가 아테네 함대가 식사를 하는 중에 기습을 했지만 7척을 침몰시키는데 그쳤다.
 
데모스테네스는 상륙해서 에피폴라이 대지에 있는 시라쿠사이 군의 대응 성벽에 야습을 했다. 이 공격으로 벽을 파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파르타 군의 보이오티아 병력이 격퇴했다. 많은 아테네 병사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도주한 나머지 일부 병력도 죽었다. 결국 데모스테네스의 가세도 아테네 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아테네 군 야영지는 습지 근처에 자리를 잡았으며, 니키아스를 포함하여 상당수가 병들어 있었다. 이를 본 데모스테네스는 데켈레아를 탈취한 스파르타로부터 아티케를[[아티케]]를 보호하기 위해 아테네로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원정을 반대했던 니키아스는 시라쿠사이에도, 스파르타에게도 더욱이 아테네 본국에도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철수 후 아테네에서 패배의 책임을 추궁당하고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니키아스는 시라쿠사이의 군자금이 곧 소진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으며, 또한 시라쿠사이 내부에 친 아테네 세력이 반란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얻고 있었다. 데모스테네스와 에우리메돈은 마지못해 니키아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니키아스도 철수를 하자는데 뜻을 같이 했다.
 
==제2차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