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켈리아 원정: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시라쿠사이의 승리: 동일 항목 일본어 위키백과 번역
119번째 줄:
에리네우스 강 근처에서 데모스테네스와 니키아스는 헤어졌지만, 데모스테네스는 시라쿠사 군의 공격에 사병 6,000명과 함께 항복했다. 나머지 병력은 니키아스와 함께 아시나루스 강으로 향했지만, 강이 가까워지면 군인은 식수를 구하면서 혼란이 생겼다. 어떤 이는 짓밟혀 압사하고, 병사들끼리의 싸움도 있었다. 강 건너편에서 시라쿠사 병이 기다리고 있었고, 아테네 병력은 대부분 학살되어 버렸다.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 원정에서 최대의 패배였다. 니키아스는 [[기원전 421년]]의 평화조약에서 그가 한 역할을 스파르타가 기억할 것을 기대하고, 개인적으로 길리포스에게 항복했다. 몇몇 병사만 카타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포로 수는 7,000명에 달했고, 시라쿠사이에 가까운 채석장으로 보내졌다. 이러한 많은 포로를 수용할만한 장소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길리포스의[[길리포스]]의 명령과는 반대로, 데모스테네스와[[데모스테네스]]와 니키아스는[[니키아스]]는 처형되었다. 나머지도 열악한 환경에 10주 동안 노출되어 있었고, 아테네 사람 이외에는 노예로 팔렸다. 아테네 사람들은 채석장에 방치해 두었고, 질병과 기아로 서서히 죽어 갔다. 소수의 생존자만 살아서 아테네에 도착하여 이 비극적인 보고를 전해주었다.
 
==아테네의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