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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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12월 20일 경성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판독한 판본을 일본인이 경영하던 지카자와 인쇄부(近澤印刷部)에서 간행된 간본이다. 《조선사료총간》제6에 '난중일기초 임진장초'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는데, 그 이전인 1928년 5월에 이순신에 관한 유물 일체의 촬영은 조선사편수회에서 모두 마친 상태였으며<ref>《조선사료총간》제6, 해설</ref> 1934년 연차계획안 속의 사료총간목록 속에서 난중일기 초본과 임진장초(활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친필본과 전서본의 내용을 합치되, 친필본의 형태와 체재를 그대로 살려 날짜별로 나열, 친필본에서 마멸,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는 미상기호로 처리하였다. 수정된 내용은 오른편에 빠짐없이 표시하고, 관련 내용은 위에, 인명과 지명은 옆에
그 이전인 [[1916년]], 조선연구회(朝鮮研究会)의 주간을 맡고 있던 아오야나기 난메이(靑柳南冥)가 전서본 《난중일기》를 토대로 일본어 해석과 함께 《원문화역대조 이순신전집》(原文和譯對照 李舜臣全集)에 수록한 간본이 존재하나, 이는 임진년 정월 초하루부터 을미년 5월 29일까지의 일부 내용만을 실은 발췌본이었다(이듬해 난중일기에 현토를 단 《난중일기장》이 《이순신전집》에 실려 간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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