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스 4세 디오예니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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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군은 수적으로 우세했으나 용병에 의존했기에 훈련도 낮았고, 충성심도 없었다. 전투 중 아군의 배신에 의해 비잔티움 제국군은 무너지고 로마누스 4세 또한 포로가 되었다. [[로마 황제 연대표|로마황제]]가 포로가 된 것은 3세기 [[발레리아누스]] 이래 처음이었다. 이 패전으로 [[소아시아]]는 투르크인이 점령하게 되었고, 후에 [[오스만 제국]]에 의해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는 원인이 된다.
 
한편 아내 에우도키아는 남편이 전투에 패해 포로가 된 것을 알고, 남편을 폐위하고 [[콘스탄티누스 10세|전 남편]]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미카일 7세|미카일 7세 두카스]] 새로운 황제로 즉위시켰다. 그해 셀주크 제국으로부터 석방된 로마누스 4세는 미카엘 7세의 황위계승을 인정하지 않고 저항했으나, 사로잡혀 두 눈이 멀게 된 뒤에 추방되었다. 그는 1072년 실의 속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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