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 라이프치히: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8번째 줄:
|홈구장 = [[레드불 아레나 (라이프치히)|레드불 아레나]]
|수용인원 = 44,345
|구단주 = {{국기그림|독일}} 올리버 민츨란트
|회장 = Markus Thurner
|감독단장 = {{국기그림|독일}} Ralph[[랄프 Hasenhuttl랑닉]]
|감독 = {{국기그림|오스트리아}} [[랄프 하젠휘틀]]
|리그 = [[분데스리가]]
|시즌 = [[푸스발-분데스리가 2015-16|2015-16]]
|순위 = [[2 분데스리가]], 2위(승격)
|현재시즌 =
|웹사이트 = [http://www.dierotenbullen.com/ 공식 홈페이지]
| pattern_la1 = _polonia16h
| pattern_b1 = _salzburg1617h
줄 49 ⟶ 50:
 
'''라젠발스포르트 라이프치히'''(RasenBallsport Leipzig e. V.,)는 '''RB 라이프치히'''라고도 불리우며, [[2009년]]에 창단된 [[독일]] [[작센 주]]의 [[라이프치히]]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2009년]] [[오스트리아]]의 음료회사인 [[레드불]] [[게젤샤프트 미트 베슈렝크터 하프퉁|게엠베하]]에 의해 창단되었다. [[독일]] 5부리그 [[오버리가]]에서 시작하여 8년 내에 1부리그인 [[푸스발-분데스리가]]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015-2016시즌 2부리그에서 최초로 1부리그에 승격해 현재 1부리그인 [[푸스발-분데스리가|푸스발 분데스리가]]에 속해있다.
[[파일:Leipzig von oben Zentralstadion.jpg|섬네일]]
 
== 역사 ==
59번째 줄:
레드불은 [[동독]] 지역에 50만 인구를 가진 대도시인 [[라이프치히]]를 타겟으로 삼았다. 새로운 구단을 창설했을 때 가장 큰 잠재력을 지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라이프치히는 독일 내에서 가장 오랜 축구 역사를 가진 도시이며, 독일 축구 대회의 첫번째 챔피언을 배출한 곳이었다. [[동독]] 시절, [[1. FC 로코모티브 라이프치히]] [[BSG 케미 라이프치히]] 두 구단이 있었고 이들은 국제적으로도 수준 높은 구단들이었다. 그러나 독일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축구계는 몰락을 거듭했다. [[푸스발-분데스리가 1993-94]] 시즌 이후로 [[푸스발-분데스리가 2015-16|2015-16]] 시즌까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동독 지역 축구단은 한 팀도 없었다. 98년부터는 프로 대회에 참가하는 팀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파일:Leipzig von oben Zentralstadion.jpg|섬네일|right|젠트랄슈타디온]]
레드불 입장에서 라이프치히는 아주 매력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교통망과 큰 공항을 보유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큰 규모의 경기장을 가지고 있는 도시였다.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젠트랄스타디온젠트랄슈타디온]]은 [[베를린]]의 [[올림피아스타디온올림피아슈타디온]] 다음으로 동독에서 두번째로 큰 경기장이었다.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 레드불은 기존에 있던 구단을 인수하는 방법을 철회하고 새로운 구단을 창설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2009년]] 레드불은 새로운 구단을 창단하기 위해 [[작센 주]] 축구 협회와 접촉을 하였다. 그러나 새로 창단 된 구단은 11부-12부 리그인 [[크라이스리가]]에서 시작해야 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다른 구단이 새로운 구단에게 대회 참가 권리를 양도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레드불은 라이프치히 서부지역 작은 마을을 연고로 하는 [[SSV 마르크란슈타트]]라는 작은 구단을 찾아냈다. 이 구단은 국제적인 기업과 협상을 하는 데에 적극적이었으며, 5주간의 협상을 걸쳐 35만 유로에 권리 양도가 이뤄졌다. SSV 마르크란슈타트와는 파트너쉽을 맺고 협력관계를 이어나갔다.
 
=== 초창기 ===
[[2009년]] [[5월 19일]] ''라젠발스포르트 라이프치히''가 창단되었다. 이는 레드불 스포츠 계획의 다섯번째 축구단으로,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뉴욕 레드불스 FC]], [[레드불 브라질]], [[레드불 가나]]의 뒤를 이었다. RB 라이프치히의 일곱 명의 창립 회원들은 모두 레드불의 임원이었다. 스포츠 에이전시 출신 안드레아스 새들로가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로트 바이스 알렌]] 감독 출신인 요아힘 크룩이 스포츠 디렉터로 선임되었다. 안드레아스 새들로는 [[독일 축구 협회|DFB]]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회장에 임하기 전 에이전트 직을 사임했다. [[독일 축구 협회|DFB]]의 제재로 인해 구단명에 기업명인 레드불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RB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였다. RB는 라젠발스포르트의 약자이며, 그 뜻은 (Rasen:잔디 구장), (Ball:공), (Sport:스포츠)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었다. 또한 RB는 레드불의 약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RB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독일 5부리그인 [[오버리가]]에 참여하기 위해 [[SSV 마르크란슈타트]]로부터 코칭스태프와 1군 선수들을 인수했다. 오버리가에 참여하기 위해 [[북동부 독일 축구 협회]]의 허가가 필요했는데, 조건은 연령별 유소년 축구팀을 4개 보유하고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SSV 마르크란슈타트는 유소년 팀은 유지시키고 싶어했고, 레드불은 다시 [[FC 작센 라이프치히]]와 접촉을 시도했다. 작센 라이프치히의 재정상황은 더욱이 안좋아졌고, RB 라이프치히에 유소년 팀을 양도하는데 합의했다. [[2009년]] [[6월 13일]] [[북동부 독일 축구 협회]]는 이 두 구단 간의 유소년 팀 양도에 허가를 내렸다. RB 라이프치히는 첫 시즌 [[오버리가]]에 참가하는 동안 [[SSV 마르크란슈타트]]의 홈구장으로 5,000명의 수용인원을 가진 [[스타디온슈타디온 암 바드]]를 사용했다.
 
RB 라이프치히는 창단하면서 8년 이내에 독일 최상위 리그인 [[푸스발-분데스리가]]에 진출할 것을 천명했다. [[레드불]] [[게젤샤프트 미트 베슈렝크터 하프퉁|게엠베하]]의 소유주인 [[디트리히 마테시츠]]는 RB 라이프치히가 독일의 챔피언을 노릴 것이라 이야기했다. [[라이프치히]]의 구단이 마지막으로 독일의 챔피언이 되었던 것은 [[1903년]]이었다.
 
=== 오버리가 ===
[[2009년]] [[7월 10일]] 독일 6~8부리그인 [[란데스리가]]의 [[SV 바네비츠]]와 친선경기를 가지며 역사적인 첫 경기를 치렀다. 경기는 [[마르크란슈타트]]의 [[스타디온슈타디온 암 바드]]에서 열렸으며, RB 라이프치히의 5 : 0 승리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2009년]] [[7월 31일]] 첫 공식 대회에 출전했다. [[작센 컵]] 1라운드에서 [[VfK 블라우바이스 라이프치히]]와 맞붙었고, RB 라이프치히는 또다시 5 : 0 승리를 장식했다. [[2009년]] [[8월 8일]] [[FC 카를 차이스 예나]]와 역사적인 리그 첫 경기를 가졌다. 경기는 1 : 1 무승부로 마무리되었다. 오버리가 2009-10 시즌 절반이 지나 구단은 리그 1위를 수성했다. [[2010년]] 1월 [[에네르기 콧부스]]로부터 [[미드필더]] [[티모 로스트]]를 영입했다. 74득점 17실점과 단 2패만을 기록하며 정규 리그를 마무리지었고, 구단은 4부 리그인 [[레기오날리가]] 북동부로의 승격이 확정되었다.
 
=== 레기오날리가 ===
[[레기오날리가 2010-11]] 시즌이 시작되기 전, RB 라이프치히는 리저브 구단들을 SSV 마르크란슈타트에 돌려주었다. 대신에 ESV 델리슈츠를 인수하여 RB 라이프치히의 리저브 구단으로 두었다. 또한 [[스타디온슈타디온 암 바드]]를 떠나 [[젠트랄스타디온젠트랄슈타디온]]으로 옮겼고, 경기장 명칭은 [[레드불 아레나 (라이프치히)|레드불 아레나]]로 변경되었다. 레드불 아레나에서의 첫 경기는 [[FC 샬케 04]]와의 친선 경기였으며, 21,566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2010년]] [[8월 6일]] [[튀르키옘스포르 베를린]]과리그 개막전을 가졌다. 레기오날리가에서의 첫 시즌은 4위로 마무리되었고, 승격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1년]] [[6월 1일]] [[작센 컵]] 결승에서 [[켐니츠 FC]]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구단 역사상 첫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또한 [[DFB-포칼 2011-12]]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승격에 실패하면서 감독과 스태프들이 경질되었고, 선수단 대부분이 팀을 떠났다. [[오버리가]]부터 함께한 선수는 단 세명만 남게 되었다.
 
[[File:Ralf Rangnick 2011 2.jpg|thumb|right|250px|2011년의 [[랄프 랑닉]], ([[FC 샬케 04|샬케 04]] 감독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