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렝고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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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오스트리아는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고 프랑스에 대한 선전포고을 개시하고 [[1800년]]까지 북 이탈리아의 대부분을 탈환했다. [[1799년]] 제 1통령에 취임하여 프랑스 독재권을 확립한 나폴레옹은 반격을 위해 [[제네바]]에 군을 집결시켰다. [[1800년]] 5월 37,000명을 이끌고 그랑 생 베르나도 고개(Gran San Bernardo)을 넘어 북 이탈리아에 진출했다.<ref>Marengo, Military History Vol. 17 Issue II, pg 63 </ref>
 
그때 오스트리아군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내는 임무를 맡은 [[미하일 폰 멜라스]]가 10만의 병력을 갖고 이탈리아방면 사령관 [[앙드레 마세나]]을 압도하여 이탈리아의 요충지 [[제노바]] 포위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의 배후에 있던 [[밀라노]]와 [[파비아]]를 점령하여 멜라스와 오스트리아-알프스 방면군을 분단시키는 작전에 나섰으나 제노바의 프랑스군 부대는 한계에 달하여 6월 4일 항복했다. 오스트리아군은 [[토리노]]에 집결했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의 후방차단을 노리고 폰강을 건너 6월 9일 전위부대가 제노바에서 진출한 오스트리아군과 충돌하여 승리했다. 오스트리아군은 퇴로가 차단당할 위험이 생겼고, 사령관 멜라스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나폴레옹을 공격하기로 하고, 동쪽으로 진군할 것을 결정한 뒤 알렉산드리아에 집결하여 프랑스군과 대결하기 위해 전진했다. 이에 대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오스트리아군 주력이 알렉산드리아엔 없고, 제노바 방면으로 퇴각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상당한 전력을 가진 분견대를 분산하여 오스트리아군의 북쪽 퇴로인 포강과 남쪽 퇴각로인 제노바로 서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