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 안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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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시조 안원린(安元璘)은 [[고려]] [[공민왕]] 때 순흥군(順興君)에 봉해진 문숙공(文淑公) 안목(安牧)의 셋째 아들로 문과에 급제한 후, 정당문학(政堂文學) 검교중추원사(檢校中樞院事)를 지내고 탐진군(耽津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안원린이 과거에 급제하여 정당문학 등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사 등의 기록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시조 안자미(安子美)부터 [[안향]](安珦)의 증손자인 안원숭(安元崇)까지 7세가 줄곤 독자(獨子)였기 때문에 현대에 편찬된 [[신 죽산 안씨]]와 탐진 안씨의 시조 내용은 위보(僞譜)이다.<ref>{{서적 인용|저자=안재홍|제목=순흥 안가는 없다|쪽=|출판사=다락방|날짜=2009년 7월 21일|ISBN=9788978580526}}</ref> 20세기 이후순흥 안씨와 계보를 짜맞추기 위해 안원린(安元璘)이라는 가공인물을 안우(安祐)의 아버지로 만들어 시조로 받들기 전까지는 [[안우]](安祐)가 시조였다.
 
《만성보(萬姓譜)》와 1845년 탐진안씨 족보 을사보 서문에는 탐진 안씨의 시조가 '''[[안우]]'''(安祐)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안우]]'''(安祐)는 고려 공민왕 때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추충절의정란공신(推忠節義定亂功臣)에 올랐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72080 『高麗史』 卷 一百十三, 列傳 二十六]</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