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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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군사들이 호신용의 의미로 방패에 기이한 동물(예: 용, 호랑이, 기린 등)이나 도깨비를 그리는 것이 예사였으나,
그는 “국가의 어려움은 신하의 어려움이요, 어버이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할 바이다. 어버이를 대신하여 나라에 보답한다면 충과 효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國患臣之患 親憂子所憂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라는 시를 지어 붙였다.
<ref> 엠파스 한국학, 김지대 편,http://koreandb.empas.com/history/people/detail?sn=8083 </ref>
 
마침 거란 토벌군 총사령관 원수(元帥) 조충(趙沖)이 군사를 점검하다 그의 방패를 보고 놀라 비범한 사람이라 여기고 가까이에 두어 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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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pic55up3.jpg|thumb|355px|김지대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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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정인지 外, <<고려사(高麗史)>> , 권 102 김지대(金之岱) 열전(列傳)
 
<ref>정인지*김종서 外, <<고려사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권 102 김지대(金之岱) 열전(列傳)</ref>
<ref> *서거정 <<동국통감(東國通鑑)>> </ref>
<ref>김종서 外,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ref>
=== 주석 ===
<ref> 서거정 <<동국통감(東國通鑑)>> </ref>
=== 주석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