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가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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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Gudea of Lagash Girsu.jpg|thumb|left|150px|라가시의 [[구데아]], [[텔로흐]]에서 발견된 섬록암 조각상, [[루브르]]]]
 
[[텔로흐]]에서 발견된 비문 기록에 의하면따르면, '''라가시'''는 [[수메르]] 지역에서 [[기원전 3000년]]경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도시였다.
[[우르-니나]](Ur-Nina)([[기원전 2400년]]경)와 그의 후계자들은 동쪽의 [[엘람]]인들, 북쪽의 ''켄지''(Kengi)와 [[키시]]의 왕들과 겨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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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티]]족의 압박으로 [[사르곤]]의 제국이 붕괴된 이후에, '''라가시'''는 다시 한번 [[우르-바바]](Ur-baba)와 [[구데아]]의 치세하에 번성하여, 먼 지역까지 상업적 연락을 취하였다.
구데아 자신의 기록에 의하면따르면, 그는 ''아마누스''와 [[시리아]]의 [[레바논]] 산맥에서 삼나무를 들여왔고, 동東아라비아로부터 섬록암을, 중부와 남부 아라비아와 시나이로 부터 구리와 금을 들여왔고, 그의 군대는 동쪽의 [[엘람]]과 전투를 벌였다.
 
그의 치세는 특히 예술적 발전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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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영토는 대략 1,600km²에 달하였고, 17개의 큰 도시들과, 여덟개의 지방수도, 많은 마을들(이름이 알려진 것만 40개정도 된다.)을 포함하였다.
 
한 추정에 의하면따르면, '''라가시'''는 [[기원전 2075년]]부터 [[기원전 2030년|2030년]] 사이에 가장 거대한 도시였다.[http://geography.about.com/library/weekly/aa011201a.htm]
 
'''구데아''' 이후에, '''라가시'''는 세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후 그리스 왕국 [[카라센]](Characene)에 편입되고, 그 위에 [[셀레우시드]](Seleucid 또는 '''셀리우키아''') 요새가 건설될 때까지는 아무런 자료를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