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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대행치예승(大行治禮丞)이 되었고, [[대홍려]]문학(大鴻臚文學)으로 옮겨간 후 지방관을 거쳤다가 경서에 밝아 박사(博士)가 되었다. 이후 대신들의 추천으로 급사중(給事中)이 되었다. 나라에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경서를 인용하여 해석하였고, 정치상의 문제를 아뢰었다.
 
[[전한 원제|원제]] 때 [[승상]] [[위현성]]이 [[유태공|태상황]]의유태공의 종묘를 폐지하려 하였는데, 평당은 이에 반대하였고, 원제는 평당의 말을 따랐다.
 
이후 사자가 되어 유민들을 [[유주]]로 이주시켰을 때, [[자사 (관직)|자사]]와 [[태수]]들 중 근면한 자를 찾아내어 보고하였고 또 [[발해군|발해]]의 염지(鹽池)를 개방하여 백성을 구제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때 파견된 열한 명의 사자들 중 가장 높은 실적을 쌓아, 승상사직(丞相司直)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법에 걸려 [[삭방]]자사로 좌천되었으나,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장신소부(長信少府) · 대홍려 · [[광록훈]]으로 승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