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로동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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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로동당'''(南朝鮮勞動黨, {{llang|ru|Трудовая партия южной Кореи}} {{llang|en|Workers' Party of South Korea}}), 줄여서 '''남로당'''은 [[1946년]] [[11월 23일]] [[서울]]에서 [[조선공산당]], [[조선신민당|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의 합당으로 결성된 [[공산주의]] 정당이다. 당수는 초대 [[여운형]], 2대 [[허헌]], 3대 [[박헌영]]이 맡았다. 기관지로 [[노력인민]]이 있었다.
 
== 남조선로동당의 역사 ==
=== 좌파운동의 재정립 ===
1945년 8월 15일 독립 이후 남한에는 여러 좌파 정당들이 있었지만,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등으로 조선 공산당의 활동은 거의 정지 상태에 있었으므로, 남한 내 사회주의, 공산주의 세력을 재정비하기 위하여 3당([[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조선신민당|남조선신민당]])을 합당하여 '남조선로동당'을 조직하게 되었다. [[여운형]]이 초대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부위원장 [[박헌영]]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당내 주도권 장악문제로 여운형과 박헌영은 지속적으로 갈등하였고, 박헌영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여운형의 [[좌우합작 운동|좌우합작 노선]]을 비판하자, [[여운형]]은 탈당하고 후에 [[근로인민당]]을 창당하였다.<ref>공산당을 비롯한 좌파세력들은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인해 미군정과 대립하였고, 더욱 급진화되었기 때문에 여운형을 비롯한 중도파 세력의 좌우합작 노선에 강하게 반발했다.</ref>
 
[[1946년]] [[12월 2일]], [[허헌]]은 기자회견에서 사로당([[사회로동당]])을 겨냥하여 '기회주의적이고 영웅주의적인 태도로 [[인민]]의 갈 바를 혼란시키는 것은 절대로 배격하는 바'라고 비난하고, '진실로 독립과 인민의 이익을 위하여 싸우려는 진정한 동지는 남로당에 들어와 같이 싸울 수 있다'라고 밝혔다.
 
=== 좌익 운동 ===
남로당은 초기에 주로 합법적으로 남한에서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을 계속하였고, 한편으로는 [[노동자]], [[농민]]들을 선동하여 각종 [[파업]]투쟁 등을 주도하였는데, 대표적으로 [[10.1 대구 사건|10월 1일 대구 사건]]을 들 수 있다.<ref>당시 주로 서울이나 대구 등 공업지역에서 공산주의 활동이 활발했다. 역사학자 [[이덕일]]박사는 껍질이 붉은 [[사과]]와 속이 붉은 [[수박]]에 비유하여 광복 이후 [[한반도]]에서는 공산화가 진행되던 북부 지역보다는 [[자본주의]] 진영에 편입되고 있던 남부 지역에서 농민의 대부분이 [[소작인]]일 정도로 계급갈등과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사회구조문제를 [[거름]]으로 하여 공산주의 운동이 활발하였다고 말한다. 《우리역사의 수수께끼》2권/이덕일,김병기 같이 씀/김영사</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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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남조선로동당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고, 남로당파가 숙청으로 사라진 뒤에도 '남로당'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던 [[조선로동당]]의 지부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자리잡았다.
 
== 대한민국내에 남로당과 관련된 사건 ==
=== 2·7파업과 남로당 ===
{{본문|2·7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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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 각주 ==
<references/>
 
[[분류:남조선로동당| ]]
[[분류:1947년 설립설립된 정당]]
[[분류:1955년 해체]]
[[분류:한국의 공산주의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