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254번째 줄:
}}
[[파일:Korea-Seoul-Changdeokgung-Seonpyeongmun and Daejojeon-01.jpg|left|thumb|250px|선평문과 대조전]]
궁 밖에서 대조전까지 가려면 돈화문과 진선문, 숙장문을 지나 적어도 5개 이상의 문을 더 통과해야만 하였다.<ref name="yi69"/> 희정당에서 대조전의 정문인 선평문(宣平門)까지는 행랑으로 연결되어 있고,<ref>최종덕, 96쪽.</ref> 선평문에서 대조전 월대까지는 어도가 깔려있어 두 건물 사이를 오가는 데 배려하고 있다.<ref name="ch97">최종덕, 97쪽.</ref> [[대조전]](大造殿)은 왕비의 생활 공간이자 임금과 왕비의 침전이었다.<ref name="ch97"/> 대조전은 왕실의 대통을 이을 왕자를 생산하기 위하여 좋은 날을 골라 임금과 왕비가 동침하는 장소였다.<ref name="ch97"/> 이 곳에서 [[조선 성종|성종]], [[조선 광해군|광해군]], [[조선 인조|인조]], [[조선 효종|효종]]을 비롯하여, [[조선대한제국 순종|순종]] 등이 거처하였으며, [[조선 순조|순조]]의 세자로 나중에 문조로 추존된세자 [[조선 문조|효명세자]]가 태어난 바 있다곳이다. 또한 [[폐비 유씨]], [[효현왕후]], [[효정왕후]] 등 왕비들이 거처한 곳이기도 하다.
 
대조전은 인조 때 재건될 당시 45칸 규모의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정면 9칸, 측면 4칸인 36칸으로 줄었다.<ref name="yi69"/> 가운데 정면 3칸, 측면 2칸은 통칸으로 하여 거실로 삼았으며, 거실의 동ㆍ서쪽으로 각가 정면 2칸, 측면 2칸을 통칸으로 하여 왕과 왕비의 침실을 두었다.<ref name="yi69"/> 거실의 앞 퇴칸은 월대로 출입하도록 하였고, 뒤 퇴칸은 후원으로 출입할 수 있게 하였으며, 각 침실 측면과 뒷면에는 작은 방을 두어 시종들의 처소로 삼았다. 현재 거실의 바닥은 마루를 깔고 큰 의자를 두었으며,<ref name="yi69"/> 침실과 작은 방은 온돌로 꾸몄다.<ref name="yi72">이상해, 72쪽</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