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라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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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라트부의 지도자는 칸이라는 직위 대신 타이시(太師)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타이시라는 칭호는 몽골 제국 시대 사령관이라는 의미였다. 오이라트부는 칭키스칸의 직계가 아니라서 오이라트부 지도자가 실권을 장악했는데도 칸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 설령 이 사람들이 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더라도, 몽골의 유목민들이 그 사람을 칸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것을 칭키스칸의 통치 원리(chinggisid principle)라고 했다.
 
[[칭기즈칸]]의 집권 시절 삼림 부족 중 세력이 가장 강했던 오이라트부의 수령 쿠투카(忽都合)는 칭기즈칸에게 귀순하여 그때부터 원의 존립 시기까지 많은 오이라트부 출신의 사람들이 원의 권신이 되었다. 원이 망하고 원의 마지막 황제 [[토곤테무르]]가 황족들과 측근들을 데리고 [[막북]](漠北)으로 피신하여 [[북원]](北元)을 세운 때 오이라트의 수령 보칸(孛罕)은 북원의 타이시로 집권했다. 보칸이 죽자 그 사람의 아들 울리다이 바타르, 멩구 테무르에 이어 멩구 테무르의 아들 마흐무드의 집권 시기가 되어 오이라트는 재흥하기 시작했다. 마흐무드는 북원의 경쟁자였던 대신(大臣) 올제이 테무르를 죽이고 북원 대칸이 소유하던 옥새([[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를 빼앗아 왔다. 당시 명의 황제 [[영락제]]는 이 소식을 듣고 옥새를 마흐무드에게서 돌려달라 하려고 했으나 곧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포기했다.
 
1416년 마흐무드가 죽고 그 아들 [[토곤]]이 마흐무드의 지위를 이어받는데 토곤 시대에 오이라트는 몽골 초원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아울러 토곤의 아들이 [[에센 칸|에센]]인데 이 부자 시대에 오이라트는 몽골 초원의 패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