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소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Dbwoqja1 (토론 | 기여)
Dbwoqja1 (토론 | 기여)
49번째 줄:
[[파일:안동소주 호리병(andongsoju).jpg|thumb|200px|명인박재서안동소주 제품]]
[[파일:Korean rice wine-Andong soju-01.jpg|thumb|조옥화 안동소주]]
안동소주는 신라시대부터 그 기원을 잡는다. 증류기술은 아랍지역의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발명되었는데, 당시 신라는 아랍과 활발한 중계무역을 벌여왔다. 신라 괘릉에서 출토되는 이국적 용모를 한 무인상과 페르시아 유리잔은 신라와 아랍과의 관계를 증명한다. 이때 페르시아 유리잔과 함께 증류주의 제조법이 전래되어 왔다.또한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증류식 술을 마셔왔다고 하는데, 신라와 당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증류식 술이 신라시대부터 마셔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f>[http://www.andongsoju.co.kr 민속주 안동소주 (경북무형문화재12호, 전통식품명인20호 조옥화 할머니가 만듭니다)<!-- 봇이 따온 제목 -->]</ref>
안동에서 소주의 제조법이 발달한 것은 [[원나라]]의 한반도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나라가 한반도에 진출한것이 13세기인데,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한 원의 병참기지가 안동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안동소주의 직접적인 기원은 몽골군에 의해 안동에 소주가 전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원간섭기 고려와 원이 연합하여 일본정벌을 하던 때에 특히, 1281년 2차 일본정벌 때 충렬왕이 안동에 행궁을 설치하고 30여일 이상 머문 적이 있다. 이때에 충렬왕은 안동행궁에서 일본정벌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원나라에 장수를 파견하여 이 사실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때 퇴각하던 원나라 군사도 안동을 경유하여 돌아갔다. 따라서 안동지역소주는 충렬왕이 안동에 머물던 1281년이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ref>배영동《지방사와 지방문화》,380p</ref>
안동소주를 비롯한 소주는 [[고려]] 시대 권문세가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민간 요법으로 배앓이, 독충에 물린데는 소주를 발라 치료하는 등 약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조선명인전에는 [[조선 연산군|연산군]]때 안동으로 귀양왔던 농암 [[이현보]] 선생이 중종 반정 후 지평(持平)으로 복직되어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직무에 충실하여 동료간에 소주도병(燒酒陶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기록에서 소주의 역사적 일단을 볼 수 있다. [의서(醫書)]에서는 소주가 약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현재 안동 지역민의 제보에서도 상처에 소주를 바르고, 배앓이, 식용증진, 소화불량에 소주를 사용했다고 한다.<ref> [http://www.andongsojumall.com/ 안동소주몰][http://www.andongsoju.co.kr/ 안동소주] </ref>
 
안동소주는 신라시대부터 그 기원을 잡는다. 증류기술은 아랍지역의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발명되었는데, 당시 신라는 아랍과 활발한 중계무역을 벌여왔다. 신라 괘릉에서 출토되는 이국적 용모를 한 무인상과 페르시아 유리잔은 신라와 아랍과의 관계를 증명한다. 이때 페르시아 유리잔과 함께 증류주의 제조법이 전래되어 왔다.또한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증류식 술을 마셔왔다고 하는데, 신라와 당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증류식 술이 신라시대부터 마셔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f>[http://www.andongsoju.co.kr 민속주 안동소주 (경북무형문화재12호, 전통식품명인20호 조옥화 할머니가 만듭니다)<!-- 봇이 따온 제목 -->]</ref>
 
== 보유자 ==